▲ 고유라   강원대병원 가정의학과
▲ 고유라
강원대병원 가정의학과
세월호 때 휴가를 내어 진도체육관으로 진료를 나간 적이 있었다.회진을 도는데 혈압이 180,200이 넘어가는 유가족분들이 종종 발견되었는데 평소에는 혈압이 정상이던 분들이었다.아무리 혈압약 여러가지를 써도 혈압이 내리지 않더니,오히려 안정제를 처방해 드리자 애끓는 마음이 좀 진정이 되어 혈압이 잡혔다.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아닐지라도,우리는 마음이 아픈 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겪곤 한다.우리 조상들은 그 중에 울화가 치밀고 억울한 마음이 들고 있고 화가 올라오면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화병이라 표현했었고,지금의 의사들은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이 몸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증상이 신체로 나타났다고 해서 ‘신체화증후군’,‘신체화장애’라고 부른다.주로 가만히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조여들고 숨이 끝까지 쉬어지지 않는다던가,소화가 안되고 명치에 뭐가 콱 막힌 것 같다거나,원인 모를 피로나,두통을 비롯해서 몸 여기저기의 통증을 호소하시는 경우가 많다.

생각보다 유병율은 높아서 외래로 오는 환자의 많게는 30%까지가 신체화장애에 해당한다는 보고도 있다.머리가 아프고,소화가 안되고,피로하고,가슴이 아프고,답답하고,잠이 안오고,이래서 병원을 찾는 세 분 중 한 분은 사실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분들일 수 있다는 거다.대부분 여러가지 검사를 해도 몸의 이상은 딱히 발견되지 않아,환자분들은 답답해하고 가족이나 주변에서는 꾀병처럼 보아서 억울해하시기도 한다.꾀병과는 다른 점이 본인은 분명히 증상이 있다는 것이다.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실제로 아프다.우리의 마음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력해서 가짜약이 효과를 발휘하게도 하고,통증을 만들기도 하고 낫게도 한다.

신체화 증후군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어떤 분들이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좀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주로 여성-아내,며느리,나이든 분,어린 학생들,회사에서라면 말단직원- 즉,사회적으로나 관계에서 약자인 분들이 흔히 호소한다.내가 심리적으로 힘들면 힘들다,화가 난다,참기 힘들다라고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에,몸이 대신 아픈거다.너 지금 이렇게 힘들다고 나 지금 이렇게 못 견디겠다고 몸이 대신 알려주는 것이다.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도 이에 해답이 있다.체중이 빠진다던지 잠을 못 이룰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라던지 하는 경우에는 먼저 중요한 병을 배제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해서 확인하고,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면,‘신체화증후군’이 아닐까,즉 사실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닐까하고 의사도 환자도 한 번 의심해 봐야 한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분들도 있을 거고,마음을 들여다 볼 힘이 없는 경우에는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다.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내가 잘 들여다보고 잘 관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바로 포인트이다.스스로 잘 안되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저같이 스트레스를 주로 다루는 의사를 찾아오시길 바란다.간단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제를 써서 증상이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것을 보면 진단도 되고 많은 증상으로부터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질 수 있다.

주변에서는 그 사람이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신체화증후군의 경우 명확한 진단명은 나오지 않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며 병원을 전전하다보니 보호자들이 지치고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아니 날 왜 저렇게 괴롭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거다.하지만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그리고 마음이 힘든 것을 살펴주길 바란다.의외로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증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본인이나 주변에 신체화증후군에 의심되는 분들이 있다면,병의 원인을 찾는 실마리로 삼고 짧은 글이나마 부디 마음의 위로가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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