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   시인
▲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
시인
내가 사는 지역은 주말마다 관광객으로 붐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넘쳐나는 사람들과 자동차로 시내는 몸살을 앓는다.

그 주말과 휴가철에 지역주민들은 지인과 친척들의 방문으로 인한 손님치레를 연중행사처럼 겪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거나 특산물로 만들어진 지역의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다. 유명 관광지에 사는 대가로 내야 되는 고지서 없는 세금이다.

이번 여름에도 방문한 지인들과 평소 다니던 물회를 먹으러 갔다. 평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맛있는 집으로 소문나서 자주 가던 집이었지만 그렇게 손님으로 붐비는 집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골목길부터 차가 밀려 있었다. 차에 내려 식당에 갔더니 그 좁은 골목길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안면 있는 주인에게 물었더니 두 시간은 기다려야 차례가 온단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모 방송국의 유명한 음식프로그램에 식당이 소개 되었더니 이 난리가 났다며 환한 미소로 돌아섰다.

방송매체와 SNS의 위력을 또 한 번 실감하며 할 수 없이 다른 단골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 공급이 최우선 순위지만, 이제는 그 생존의 욕구를 넘어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 문화로 진화되었다는 것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 변화는 ‘맛’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 질 것 같다.

그 의미의 첫째는, 음식 따위가 혀에 닿았을 때의 느껴지는 감각. 두 번째가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나 분위기. 세 번째가 어떤 일에 대하여 느끼는 만족스러움 또는 재미로 정의되어 있다. 즉 이제 우리는 음식을 맛과 함께 느낌이나 분위기, 거기에 재미를 더해서 먹는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맛, 분위기, 재미.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맛집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바로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떠도는 소식’이라는 뜻을 가진 소문(所聞)이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정한 시간 내에 사회의 상당수의 사람이 그들의 취미, 기호,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등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전염되는 ‘사회적 동조현상’과 자기가 원하는 인물이나 사회계층에 대한 모방을 통해서 그들과 자기가 같다고 하는 모방현상의 일종인 ‘심리적 동조현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주말에 00식당에 가서 00을 먹으려고 3시간이나 기다렸어.’ , ‘00집에 갔더니 탤런트 00도 와서 먹고 갔던데. 진짜 맛있더라!’라고 입소문을 내거나, 카카오 톡 또는 페이스 북에 자신이 먹은 음식상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파워 블로거들의 포스팅이 맛집을 결정한다.

거기에다 요즘 방송채널을 돌리다 보면 먹거리 방송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편성되어 짜증이 날 정도다. 그 현상이 요즘 세상의 사회적 트렌드이고, 그 방송과 SNS 효과로 홍보가 되어 소위 대박이 나는 식당도 좋은 일이고, 또한 소비자들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크게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필자는 그렇게 얻는 것과 함께 잃어가는 것은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 소문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정말 맛과 분위기와 재미를 모두 가진 진짜 맛집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필자뿐일까? 먹거리 방송에 한 번 출연하기 위해 얼마를 주었다느니, 포털사이트의 검색 순위를 올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는 등 확인 불가능한 세상의 소문들은 또 얼마만큼의 진실에 닿아있는지 또한 궁금하다.

진정한 맛은 신선한 재료와 요리하는 사람의 특수한 비법과 정성이 얼마만큼 담겨 있는가에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맛집들도 처음에는 제대로 된 재료와 정성이 가득 담긴 그 가게만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송매체나 SNS로 유명세를 타는 순간 그 고유의 정서가 사라진다. 밀려드는 손님들의 대기번호와 계산대에 그득 쌓이는 매출전표 때문에 그 집만의 정성과 비법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즐겨 찾는 나만의 맛집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우리는 혹시 맛이 아닌 소문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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