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궤변·폭언이 만연한 사회, 공자를 생각한다
법가 이념 천하 통일한 한비자 ‘만사법통’ 폭력·전쟁 부추겨
도덕 강조했지만 실패한 공자 현재까지 성인으로 존경 받아
일상속 언어 거칠고 선동적
동북아 정세 법가 부활한 형국
사태 위급할수록 말 조심 필요
언론·미디어도 언어 순화해야

법가(法家)의 시조는 한비자다.수많은 이념들이 앞다투던 중국의 전국 시대에 단연 발군을 드러낸 사상가였다.한비자가 내세웠던 법가의 요지는 이른바 ‘법대로 하라’였다.법대로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만사법통’의 철학이었던 셈이다.‘만사법통’은 폭력과 전쟁을 부추기는 사상이었다.비록,한비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법가를 접한 전국 시대의 제후들은 그 마력에 푹 빠졌다.세금 징수와 노동력 징발,전쟁 동원 등 국가 정책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잔인한 형법을 집행하는 것이 법가를 채택한 군주들의 행태였다.자연,부작용도 많았고 충돌도 뒤따랐다.언제나 그렇듯이 부작용과 충돌의 피해는 대부분 배경 없고 돈 없는 일반 백성들의 몫이었다.법가는 결국,상앙이라는 재상을 앉혀 한비자의 철학을 효율적으로 운용한 진나라 왕 정(政)에게 중국 최초의 통일 군주인 ‘시황제’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안긴다.

반면,법가의 대척점에서 사람을 먼저 강조한 이가 공자였다.그런 공자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먼저 믿음을 쌓아야 한다며 믿음을 쌓는 왕도(王道)의 출발점으로 말을 꼽았다.그의 사상이 집대성된 ‘논어’에서는 언행이 신중을 기해 행해져야 한다며 특히,아첨과 참견,잘난 척과 달변을 반복적으로 경계하고 있다.공자가 도덕적 인격체로 내세웠던 군자 역시,‘먼저 실천하고 난 다음에 말이 따르는 존재’였다.‘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던 것은 몸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겼기 때문’이라고 누눅이 강조했던 공자는 늘 자신과 제자들의 입을 단속했다.신언(愼言)으로 일컬어지는 공자의 이 같은 사상은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통치 계급과 지식인이 마땅히 지녀야할 도덕 강령으로 자리해 왔다.

한데,반 천년을 우리 곁에서 동고동락했던 신언 사상은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지배적이고 규범적인 위치를 시나브로 잃어버리고 만다.더불어 21세기 들어 합리성과 효율,생산성과 이윤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와 신자본주의가 한반도를 덮치면서 공자의 윤리 의식은 어느덧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유물이 되어 버렸다.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은 더욱 선동적이고 거칠어졌다는 생각이다.정치인들이 그렇고 교수들이 그러하며 사장들이 그렇고 고위 공무원들이 그렇다.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독설과 궤변,갑질 폭언과 비하 발언들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언어 폭력의 수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단,지도층 인사들의 입에서만 그런 언어들이 튀어나는 것이 아니다.일상 생활 속에서도 정제되지 않은 말들은 모니터와 액정 화면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자극한다.TV 속의 부모는 자식을 욕하고 사위와 며느리는 장모와 시아버지에게 대든다.직장 상사는 하대하고 부하 직원은 음해하며 친구는 고자질하고 연인은 저주한다.

일본과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필자지만 이들 국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다.하기야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고로 생각하는 시대이니 상품으로 따진다면 말만으로 높은 시청률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장사가 어디 또 있겠는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우리 동포지만 때론 동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북한은 더하다.듣기만 해도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고 소름이 돋게 하는 언어들은 고조된 TV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전율마저 일으키게 한다.그런 의미에서 다시 언행부터 살피는 몸가짐과 습관을 기원해 본다.정쟁과 전쟁도 거친 말이 오고가야 이뤄지지 한쪽만 흥분해서는 좀처럼 성립되지 않는다.

사태가 위급할수록 무겁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자세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지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보면 마치 법가가 다시 부활해 폭력과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형국이다.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유화적인 대북 정책이 야당에 의해서는 ‘완전 실패’,트럼프 대통령에 의해서는 ‘구걸’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와중이니 새삼 말해 무엇하겠는가.그렇다고 대통령과 집권 여당 역시,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적폐와 적산,부역자와 처단 같은 끔찍한 단어들 역시,야당을 향해 쉬지 않고 발사되는 처지이니.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 폭탄을 날리는 이들을 정치인,공직자,교수,기업인이 스스로 멀리하고 경계했으면 한다.더불어 언론과 미디어 역시,말을 가리고 다듬어서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했으면 한다.

비록 법가가 진나라에 채택된 후 천하를 통일하는 사상으로 군림했지만 진나라가 15년 만에 무너진 사실을 상기하자.법가의 시조 한비자 역시 모함에 걸려 옥사했다.반면,실패한 정치인이었던 공자는 만고성세의 성인으로 오늘날까지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렇게 볼 때 공자를 받들던 우리네 조상들이 작금의 한반도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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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는 196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를 역임했다.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02년부터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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