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입 노릇 골목은 밀려나고 SNS가 가상의 골목 역할
산다는 것이 시행착오도 있고 막다른 길에 일상이 돌아갔던건
눈도,입도,바람도 통하는 골목이고 광장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핸드폰
아마도 예전 골목이 이러했을것

체코 프라하,이태리 로마,쿠바 하바나,일본 교토,탄자니아 잔지바르…,이미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거기에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더해져 한층 풍성한 도시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곳이다.그토록이나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멋진 컨텐츠가 바로 이 오래되고 허름한 과거,골목에 있는 것이다.예전에 골목은 사람만 다닌 곳이 아니었다.거기에는 가정의 생계를 메고 가는 아버지의 진격이 있었고,아이들이 놀며 웃는 소리,노인들의 장기판과 담배연기,푸성귀 야채 다듬는 손길이 있었고,집집마다 스민 걱정거리의 스캔을 마친 아줌마들의 수다가 있었고,개와 고양이들의 영역 다툼이 있었고,노루꼬리 만한 햇살이 버티다 어둠으로 흘러간 사연이 있었고,짧으나 배신당한 연애의 눈물이 골목 달빛에 섞여들었다.

또,지금이야 이해도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났다.다섯 살 아이들이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는 일은 그야말로 일상이었고,귀엽다고 고추를 만지거나 엉덩이를 꼬집는 등 요샛말로 성희롱이 빈번하였지만 애나 어른이나 웃고 말면 그 뿐이었다.유리창이 깨지는 것은 일축에도 끼지 못했으며,고성방가에 눈가가 시퍼렇게 멍이 드는 싸움이 터져도 사람들은 한두 마디 거들거나 말릴 뿐이었다.그렇다고 폭력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일들이 무시로 일어났고 경찰이나 공권력 이전에 골목에서 봉합되기 마련이었다.여기에 아침저녁 출퇴근길,등굣길 걸음이 뜸해지면 골목은 아이들과 노인들의 시간이 들어찼다.아이들은 고무줄놀이,말뚝박기,술래잡기,딱지놀이와 구슬치기,골목이 좀 넓으면 땅따먹기나 미니축구,족구로 해를 보냈다.그렇게 골목은 가난을 이기는 공동의 스크럼이 되고 부조가 되었다.

골목은 이렇게 왁자하니 살아 있었다.그야말로 골목은 세상을 돌리는 실핏줄이었고,사는 일은 시끄럽고,번잡했지만 우악스레 건강하였다.원래 산다는 것이 이렇게 시행착오도 있고,유턴도 있고,막다른 길이기도 했다.그럼에도 일상이 돌아갔던 것은 밀폐된 골방이 아니라 눈도,입도,바람도 통하는 골목이고 광장이었기 때문이었다.거기에는 언제나 ‘나’와 ‘너’ 뿐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의 무언가가 있었다.지금 골목은 사라지고 있지만 광장은 아직 어떤 국면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광장은 평소에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지만 때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힘을 보여주는 정치의 장이 되기도 한다.그래서 권력은 종종 광장을 무서워한다.

반면에 골목은 여전히 조금 복잡하다.물류의 흐름상으로 보면 예전 골목은 너무 좁고 또 비효율적이기도 했을 것이다.이 문제에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되는데 불편을 감수하고 그대로 보존하며 공존하는 방식이 하나고 싹 지우고 뚫고 허물고 새로 길을 내는 방식이 또 하나다.당연히 우리는 백의민족이자 토건족의 후예답게 후자를 택했다.그래서 오래된 골목은 찾기 힘들어졌다.아시다시피 관광 컨텐츠 등 여러 이유로 지금은 오히려 돈을 들여서라도 골목을 복원하려고 하지만,소도시 구도심에서는 정주권을 명분으로 기획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아파트는 직선의 대로를 거느리고 보무가 당당하지만 어쩐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얄미운 속셈 같다.

그렇게 밀려나는 골목에서 귀와 입이 맡았던 일은 이제 SNS나 언론이 대신하고 있다.사라지는 골목길이 SNS을 통해 재림하고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그리하여 남녀노소,상하좌우 머리를 맞대고 손바닥 안의 골목길을 통해 온갖 수다와 재미와 분노와 연대감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이제 핸드폰이 없으면 숫제 벼락을 맞았거나 백주 대낮에 설사를 만난 사람처럼 안절부절을 지나 아예 백치가 돼버리는 느낌적 느낌에 봉착하고 만다.이래 말하고 나니 좀 과장된 듯 하여 정말 그럴까? 자문해보니 과연 그렇다.그만큼 핸드폰은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아마도 예전의 골목길이 이러했을 것이다.그만큼 골목은 나와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길이었다.이런 골목은 유기체처럼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인다.물동의 흐름이나 도시 디자인에 따라 있던 길도 사라지고 없던 길도 살아난다.그렇다고 디자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도로,인구,주택,거주형태,경제,문화,학군,부동산 정책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길과 도시가 형성된다.가히 자연발생 생물체처럼 생생하고 다이나믹하다.

아 그러나,아무리 요즘의 기술력이 수천만 화소로 찬란하더라도 희미해지는 기억이나마 지워지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그 옛날 땅거미가 어둑해지는 골목에서 들리는 “철수야,그만 밥 먹어라!”는 엄마의 고함신공이거나,약간 나사가 풀린 장닭이 시도 때도 없이 3옥타브로 울어대는 소리,심심풀이인지 이어지다 끊어지는 개짓는 소리에 탈탈탈 도라꾸 엔진소리에 틀어대는 테이프가 늘어져 고물을 모으는 것인지,제자신이 고물이라는 것이지 영판모를 생필품 가득 싣고 골골마다 돌아다니던 트럭이거나,몇이 놀다 갑자기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게 된 고립감이거나,어찌 잠들었는지도 모르다 깨어서는 잠결에 내다보는 마당에 가득 내려 쪼이는 햇살의 무장한 고요라거나,저물녘 길을 걷다가 보는 어느 동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는 왜 그렇게 뜬금없이 서러웠는지.

이렇게 우리에게 골목은 정서라는 경로를 타고 들어온다.골목은 동시에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실핏줄이 잘 돌아야 구석구석 괴사 없이 건강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구석구석 밝고 환해야 세상은 충만해진다.작금의 4차선 8차선의 도로야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된 바에야 낡고 외진 골목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우정은 숲길과 같아서 자주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진다.’골목 역시 그러하지 않겠는가.이미 핸드폰이라는 가상의 골목이 번성하고 있는 터이지만,언제나 제도보다는 사람이 아니었는가.서로의 실핏줄을 따라 공감하고,존중하고,또 명랑해지는 골목,그 안은 얼마나 밝고 따뜻할 것이냐.따라서 이렇게 주장해보고 싶은 것이다.골목은 잠시 어두워진 것일 뿐 곧 아침이 올 것이라고.
▲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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