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와 드넓은 요동의 평원서 키운 문화의 상징
태극 문양 볏·태양 속 검은 불새
고구려 벽화와 금동관에 등장
화가 권용택이 즐긴 새와 풍경
백두대간으로 스며든 은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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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흰 구름이 눈부시다.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녹음 짙은 나무에 바람이 인다.쾌청한 초가을이 선명한 풍경을 보여주는 오후다.몇 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만 맑은 날을 허락한다는 백두산의 천지를 찾은 날도 바로 오늘 같았다.하늘 위의 바다,천지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장군봉을 비롯한 준봉이 만든 풍경은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세트장인 듯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한반도 위로 대륙 깊이 펼쳐졌던 우리의 고대 유적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난 천지였다.평원과 준령을 두루 거느리고 역사와 민족의 한 가운데 우뚝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다.가는 길에 보았던,연암 박지원이 처음 압록강을 넘어 그 광활하게 너른 땅을 바라보며 ‘목 놓아 한번 울만한’ 평원이라 했던 요동벌도 고구려 권역에서 보자면 한 참 아래 한부분일 뿐이었다.

고구려 시조는 그 너른 들보다 훨씬 위에 위치했던 북부여로부터 내려왔다.고려시대에 와서야 쓰였던 ‘삼국사기’보다도 훨씬 전,그리고 민족혼을 깨우고 싶었던 일연의 ‘삼국유사’보다도 훨씬 전의 사료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고구려 장수왕이 선왕(先王)을 기념해 세운 광개토왕비는 그런 사실을 그 시대에 일찍이 기록한 채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 권용택 미술평론가
▲ 권용택 화가
이 미술의 역사 답사에 작가들은 어떤 영감을 받고자 했을까.기간 내내 매일 밤 세미나를 가졌다.답사 전 몇 작가에게 주제발표를 부탁했다.평창과 정선사이 가리왕산의 깊은 산골에 17년 전부터 작업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작가가 있다.1979년 비무장지대를 그린 ‘폐철’로 프랑스 ‘르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본격 등장했던 화가 권용택(사진)이다.1980년대에는 수원미술의 중심작가로 활동했다.수원에는 광역시급 규모에 버금가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있다.거기서 설립 후 두 번째로 마련된 개인전에 초대됐다.초대전은 올 10월 24일부터 내년 2월 4일까지 열린다.지금까지 중국에서 열린 ‘정의,평화,반파시스트’전에서 위안부를 그린 ‘사필귀정’으로 특별상을 받은 것이나,광주비엔날레와 ”평창비엔날레 특별전과 통일미술전,DMZ 비무장지대 특별작업전,미술그룹 ‘산과 함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작가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세미나 발표요청에 대해 답사 출발 전 그는 ‘삼족오의 상징성과 미술 역사의 데자뷰’라는 주제를 보내왔다.

삼족오(三足烏).다리 셋 달린 태양 속의 새다.고구려 고분벽화 여러 곳에도,진파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에도 삼족오가 나온다.이보다 더 앞서 일찍부터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었음도 여러 면에서 밝혀지고 있다.금동장식에서 보듯 삼족오에는 선명한 볏이 있다.태극문양 볏을 가진 것도 있다.검은 대나무를 오죽(烏竹)으로,검은 돌을 오석(烏石)으로 부르는 것처럼 삼족오의 오(烏)는 검은 ‘오’자로 읽을 수 있다.태양 속에 있는 흑점은 검다.그렇게 태양에 사는 삼족오는 검은 불새다.고구려 국조(國鳥) 삼족오는 지금 중국인들도 고구려 시조비(始祖碑)에 새겨서 관광자원으로 내놓고 있다.

새 그림이라면 마그리트(Magritte)의 많은 작품을 떠올리게도 된다.권용택도 그 이상으로 새와 풍경을 함께 섞어 그려왔다.때로는 폭격기처럼 강산을 어둡게 덮쳐오는 불안으로,때로는 맑은 수묵(水墨)처럼 희망의 공간을 날아오르는 실루엣으로 그는 다양하게 새를 담고 있다.물론 차이가 없지는 않다.마그리트의 새는 그림의 주제로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면,권용택의 새는 그가 즐겨 그리는 백두대간 그림 속으로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편이다.마그리트는 강한 이미지 충돌을 초현실주의로 담았다.그에 비하면 권용택의 초현실은 심해처럼 드러내지 않는 힘으로 화면을 조용히 울리게 하는 것들이다.그렇게 본질적으로 그가 초현실주의자라기보다는 리얼리스트였음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 멀리 대륙 위에서 내려와 졸본에 도읍을 정했다는 주몽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길에서 본,바이칼 같은 하늘 위의 바다 백두산 천지,요동의 드넓은 평원,그 모두를 누비며 키운 문화의 상징 삼족오.백두대간 한가운데 ‘하오개 그림터’의 권용택이 그 모두를 담아 앞으로 그려낼 작품은 어떤 것이 될지 이제 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 최형순 미술평론가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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