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상호위협 악순환 한반도 위기지수 급고조
B-1B 최북단 출격에 우리 공군 동행 안해…추가 상황악화 이어질까 조심 기류도
北끌어내기 고강도 압박·군사충돌 없게 안정적 상황 관리 '이중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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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미국과 북한 간의 끝 모를 강대강(强對强) 대치 속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가 서로 쏟아내는 '말 폭탄' 난타전으로 치솟는 위기지수를 가라앉혀 실제적인 군사옵션이 한반도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정치·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게 문 대통령이 직면한 최대 숙제라는 지적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미국과 북한의 대립구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기조연설을 기점으로 다시 최고조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北 완전파괴' 언급에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와 리용호 외무상의 '태평양 상공 역대급 수소탄 시험' 발언으로 맞대응했고, 미국은 전날 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전략 폭격기 B-1B를 북한 동해 최북단까지 출격시키면서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경계했던 '악순환'이 거듭되는 상황이 최근 며칠간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22일 미국 뉴욕 순방을 끝내고 귀국길에 오르기 직전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재에도 도발하고 더 강도 높게 제재하는 식으로 이어져선 안 되며, 하루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큰 과제"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한 북한의 추가 도발 중단을 강조한 것이지만, 제재에 대해서도 일정한 선을 그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북한의 도발이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도발이 아니라면 도발 그 자체에 대한 대응방식에서 '군사옵션 실행'은 제외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북한의 도발에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압박을 가해야 한다면서도 '한반도 전쟁 불가'를 줄기차게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재·압박의 근원적인 목표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황의 '안정적 관리'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1일(미국 동부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인 만큼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선 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에서도 "북한의 위협에 과도하게 대응함으로써 긴장이 격화돼 자칫 우발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도록 협력하자"고 했다.

▲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 여러 대가 23일(현지시간) 북한 동해 국제공역을 비행하는 '무력시위'를 펼쳤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다. B-1B 랜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서 발진한 F-15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았다. 다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비무장지대(DMZ)에서 가장 멀리 북쪽으로 나아간 비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앤더슨 기지에서 발진 준비 중인 B-1B 랜서.
▲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 여러 대가 23일(현지시간) 북한 동해 국제공역을 비행하는 '무력시위'를 펼쳤다고 미 국방부가 밝혔다. B-1B 랜서는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서 발진한 F-15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았다. 다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비무장지대(DMZ)에서 가장 멀리 북쪽으로 나아간 비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앤더슨 기지에서 발진 준비 중인 B-1B 랜서.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전날 밤 B-1B의 남북접경 해상 최북단 비행에 우리 공군기가 동행하지 않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멀리 북쪽으로 나아간 비행"이라고 밝혔듯이 이번 미국의 무력시위는 기존보다 더욱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미 간 긴밀한 공조 하에 움직인 것"이라 했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 역시 전날 밤 상황을 한미가 공조했다고 밝힌 것 외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면 문 대통령이 한미 또는 독자적인 무력시위를 지시한 사실을 정부 당국은 사전 또는 사후에 공개해 왔었다. 또 지난 18일 B-1B의 한반도 출격 시에는 우리 공군 주력기인 F-15K 4대가 합세해 호위 비행을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그간 언급과 미국의 단독 비행 등을 고려해볼 때 청와대 내에서는 '21세기 들어 한반도 최북단 무력시위'가 자칫 한반도 상황의 추가적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기류도 읽히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미국의 전날 무력시위에 대해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미 공조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최고위급 인사가 전날 통화에서 일본언론의 한미 '이간'식 보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것도 양국간 소통 및 공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과 공조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고강도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은 작지 않다. 동시에 계속된 북한의 도발 국면에서 한반도 긴장지수를 끌어내릴 묘안을 찾기 위한 고심도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22일 기내 간담회에서 "지금은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압박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며 "창의적 해법 모색조차도 긴장이 좀 완화되면서 한숨 돌려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 최대의 대북 압박과 제재를 구사하면서도 일촉즉발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은 문 대통령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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