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
▲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
파리에서 고속철도를 이용하여 도버 해협을 건너면 런던의 성판크라스(St. Pancras)역에 도달하게 된다. 이 역 서쪽에 약간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국 도서관이 있고,A501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300미터 정도 더 가면 왼쪽에 웰컴 재단(Wellcome Trust Found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이 재단의 두 건물중 하나는 행정을 맡아 보는 건물이고,다른 하나에는 전시실을 갖춘 박물관과 의약학과 관련하여 방대한 자료를 갖춘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다.

매년 7월에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비로 인해 수시로 연기되는 걸 경험하신 분이라면 영국에 비가 많고 과거에 우산을 가지고 다닌 신사들이 많은 걸 떠올리며 ‘영국에는 비가 많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날씨 좋은 여름에 영국을 여행하신 분이라면 ‘영국날씨 참 좋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 물가가 비싼 것은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물건에 대해 세금이 많이 부과되니 물가가 비싸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만 대신 국립박물관,고속도로,공교육비,의료보험 등이 모두 무료이니 세금의 혜택을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입장권을 사느라 지친 분들에게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영국 박물관이나 국립 미술관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만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필자와 같이 의학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에게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웰컴 재단의 도서관과 박물관이다.런던의 비싼 부동산 가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넓고 쾌적한 상태로 방문객들을 맞아 주는 웰컴 도서관은 신분증(여권)만 있으면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여행중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최고의 장소가 되고,수시로 전시품이 바뀌는 박물관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의학자료가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곤 한다.하루에 구경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인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두 층을 차지하고 있는 의학관련 전시물은 웰컴 재단 소장품을 대여한 것이고 웰컴 박물관이 소장한 의학관련 미술품은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의학과 약학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비를 제공하기도 하고 옥스퍼드대학교를 포함한 영국내 여러 대학교에 소재한 의학사 연구소에 재정 지원을 하기도 한다.

글락소웰컴과 스미스클라인비참이 합병되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이라는 회사가 태어난 지금,제약회사 이름에서 더 이상 웰컴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는 없지만 웰컴의 창립자 헨리 웰컴(Henry Wellcome, 1853~1936)이 남겨 놓은 유산은 의약학 연구자들에게 훌륭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도 헨리 웰컴에 해당하는 분이 계시니 한독약품 설립자 고 김신권(1915~2014)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1954년에 제약회사를 설립하고,충북 음성에 우리나라 최초의 의약학 박물관인 한독의약박물관을 개원했으며 한독제석재단을 통해 의약학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연구비와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감사하게도 두 재단의 도움을 모두 받는 행운을 누린 바 있는 필자는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양 재단이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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