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숙

땅속 깊은 곳까지 봄을 심은 건 누구일까

산책 나온 달이 갓 출산한 감자꽃에 머물다 가는 밤

하얀 스위치 같은 저 꽃잎을 켜서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알 밴 감자들이 세들어 살고 있을거야

땅속 환하게 어둠을 불 밝히며

도란도란 뿌리내린 새끼감자들이 있을거야

둥근 알들끼리 툭,하고 어깨를 부딪혀도

상처가 나지 않아 마데카솔이 필요없는 땅속 마을

날카로운 아카시아 뿌리가 신경줄기를 건드려도

거참, 너털웃음 한번 웃고 나면

맛나게 풀리고마는 순박한 이들의 터,

저 깊은 땅 밑에도

흙으로 막걸리를 빚어 미소를 틔워주는 지렁이가 있고

짠눈물과 더 고소하게 퍼져가는 사랑이 자라난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서 있는 땅이 꼬물거린다

땅속의 소식을 알려주듯

갈라진 뒷굽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올라오는

따스한 이야기가 사는 마을

장난치던 바람이 뿌리혹박테리아를 빠져나오는 밤,

아직 동화가 살아있는 지하 마을에는

통통하게 살찐 봄이 감자를 키우고 있을거야

밭고랑 속,빼곡한 어미들이

포슬포슬 알전구를 켜고 아이들의 구겨진 단잠을 다려 펴주겠지

새끼달이 강물 속에 태어난 지 한참 지난 오늘밤

노랗게 여물어가는 아랫마을,

온통 깜깜해서 더 눈부시게 익어간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