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건 그 무엇이 사라지는 것이다.소멸되고 지워지는 것이다.방금전까지 있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먹고 비워진 공간,그 곳은 쓸쓸하다.무엇으로 채울 지 막막하다.바닷가에서 그렇고,들에서도 그렇다.산이라고 그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먹고 비우고 소멸된 공간에 남는 쓸슬함과 그리움,그리고 적요(寂寥).이 느낌들은 너무나 질기고 영악해서 언제나 허기를 몰고 온다.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산다는 게 다 그런 것처럼 먹는다는 것 또한 스스로 사라지는 과정이다.소멸!

달이 살집을 부풀렸다.황사와 미세먼지가 테를 둘렀지만 맵시는 여전.2017년 추석에 뜨는 달은 무엇을 비출까.김정은과 트럼프의 말 폭탄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반도에서 달은 어떤 의미인가.무엇을 소원하는가.사막 한귀퉁이에서 움직이는 물체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금방 알 수 있는 세상이라는데,우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무엇을 소망하는지 알지 못한다.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아무것도 어쩌지 못하는데….모든 찬사와 부러움과 영광을 뒤로하고 분노와 노여움으로 탈색된 세상.빛은 보이지 않는다.그저 둥그런 보름달이 뜰 뿐.

조선 후기의 문장가 이건창(1852~1898년)은 ‘가난한 농가의 추석(田家秋夕)’에서 이렇게 썼다.“…남편은 굶주림을 참으며 작은 논에 모내기를 하다가/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남편이 심은 벼를 수확한 추석날/(그 아내가)유복자 안고 오열하다가 기절한 지 오래지 않아/돌연히 아전들이 사립문을 부수며/세금 내 놓으라 소리 지른다”.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대,백성들은 가난했고 배고팠다.사라지는 그 무엇을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먹지 못한 채 소멸했다.

다시 추석을 맞는다.고통스럽다.10일연휴가 버겁고,그시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두렵다.그 무엇도 예측가능하지 않은 시간.확실한 건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것이다.작심하고 들이댄들 무엇이 이뤄질까.무엇을 얻을까.추석 아침상에 둘러앉을 가족들의 생각도 그럴 것이다.나,가족,우리,마을,지방,도시,국가가 제멋대로 해체되고 결합되며 고단한 육신을 더욱 궁지로 몰아댈 것이다.그러나 아직 알 수 없다.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풍요의 싹이 틀지,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명료해질지….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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