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살갗과 바위들, 민낯의 땅서 얻은 평범한 행복
히말라야산맥 해발 3500m 위치
6월∼9월 뺀 다른달 영하 25도
마른 땅 채워준 푸른 보리물결
낯선 여행자 배려·나눔 있는곳
히말라야나 안데스,알프스 같은 큰 산맥이 품은 산들의 넉넉함에 익숙했던 나에게 붉은 살갗과 바위들이 그대로 드러난 민낯의 라다크는 마치 지구 밖으로 나와 우주 어딘가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이 백두산 천지보다 한참 높은 해발고도 3500m.라다크 왕국의 수도였던 레.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을 통해 저벅저벅 내게 다가온 땅.
지도상으로는 분명 인도지만,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라다크는 중국,파키스탄과 등을 맞대고 그 중심에 걸쳐있는 땅이다.
마카밸리 트레킹을 하며 만난 여인은 내게 히말라야 빙하물로 키운 노란 살구 두 알을 내밀었고,나는 점심도시락에 들어있던 과자와 빵을 꺼냈다.‘안녕하세요!반가워요!잘지냈어요?잘지내요.안녕히 가세요!’이 모든 경우 다 쓸 수 있는 인사,줄레이.우리는 만날 때처럼 헤어질 때도 “줄레이~줄레이~”짧지만 깊은 눈맞춤으로 인사를 나눴다.
걷다가 만난 작은 물레방앗간.세상에,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방앗간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어른 둘이 등을 구부리고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 있을만한 크기이다.보릿가루가 곱게 저 혼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6월에서 9월,일 년에 겨우 넉 달만 곡식이 자랄 뿐 나머지 여덟 달은 영하 25도,30도까지 내려가는 라다크에서는 겨울이 오기 전에 혹독한 시간을 버틸 보릿가루와 말린 채소를 준비한다.그리고,평균고도 4천미터가 넘는 창탕고원에서는 창파족 유목민들이 양과 염소,야크를 몰아 1년에 10번이 넘게 풀을 찾아 이동을 한다.말이 4천,5천미터지,의식주는 물론 공기마저 부족한 곳에서 대대로 유목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상상하기 어렵다.천막 안이 궁금하다는 여행자의 호기심을 버터차로 맞아주고,다음 달이면 온 가족이 함께 야크털로 짠 천막을 걷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지금 잘 왔다고 토닥여주는 쏘남 도르지 아주머니.천진하게 웃는 모습에서조차 창탕고원의 바람을 이겨낸 강인함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현실일 수 있는 이 땅에서 오히려 사람과 자연의 온기가 느껴진다.나무 한그루 없이 이어지는 민둥산에 들어가 걸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손톱만한 풀꽃부터 한 뼘 크기로 자란 들풀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마른 땅을 움켜쥐고 버텨내고 있는지.
고원의 찬바람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먹성 좋은 양과 염소들이 비켜간 자리를 온전히 지켜내고 있는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은 생명들.이 땅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얻어낸 평범한 행복이다.
>> 이상은
히말라야 니레카봉 세계최초 등정.터키 최고봉 아라라트 한국최초 등정.여행문화센터 산책 대표.한국여성산악회 이사.KBS 2TV ‘영상앨범 산’출연.KBS1라디오 <이상은의 남다른 여행> 진행 중.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세상의 끝,남미 파타고니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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