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 위 그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초등학력 14세에 청력 상실
극빈 환경 속 시서화일체 몰두
소의 눈으로 소나무·매화 관찰
전통필법 넘어 ‘칠해진 달’ 표현

▲ 우안(牛眼) 최영식 작 ‘도산매송도’.수묵 필법을 살짝 바꾸어 그려진 매화와 소나무가 화선지 위에 그린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하늘과 달을 향해 꿈틀대는 생명으로 다가온다.
▲ 우안(牛眼) 최영식 작 ‘도산매송도’.수묵 필법을 살짝 바꾸어 그려진 매화와 소나무가 화선지 위에 그린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하늘과 달을 향해 꿈틀대는 생명으로 다가온다.
한국화는 독특한 분야임에 틀림없다.미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그것도 그럴 것이 백여 년 전만 해도 ‘미술’은 우리가 사용하던 말이 아니었다.언어가 들어오고,새로 그림 그리는 법이 전해졌다.박수근과 이중섭도 이런 미술의 방법으로 그렸다.붙이기,파기,깎기를 하는 석각과 목각은 조각으로서 ‘미술’이라 불리게 되었다.도자는 물론이요 염색을 비롯한 천 작업과 옻칠과 자개를 비롯한 온갖 공예도 ‘미술’이 되었다.그 말이 없을 때 지금의 한국화는 서화(書畵)라고 불렸다.그것은 많이 다른 부류였다.사대부와 문인들의 유산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런 한국화에서는 이름을 쓰는 법부터가 다르다.소처럼 큰 눈을 가진 최영식은 우안(牛眼)이라는 호를 쓴다.벼루에 먹을 갈아내고 물을 더한 수묵(水墨)이 그림의 대부분을 채운다.실제로 보이지 않는 윤곽에 먹 선이 있으니 서양인이 보기에는 별나게 보일 수도 있다.수묵으로 생생함을 담는다는 건 특별한 경지인 듯 보인다.그림 한 쪽을 비운 여백을 중시하고,시와 서예를 더한다.그래서 시서화(詩書畵) 3절(三絶)은 물론이고 낙관을 하는 전각(篆刻)까지 4절(四絶)이 예찬된다.이 글에서처럼 한국화에 대한 글을 쓰면 일단 어투부터 예스럽게 달라진다.그가 스승 소헌(小軒)을 사사(師事)한 일이라든가,읽고 그리고 쓰고 새겨 찍는 일을 모두 수련한 것도 평범하지 않다.도인처럼 소양호 청평사 가까운 산막골에서 18년째 청평산방주인(淸平山房主人)으로도 살고 있다.

▲ 한국화 작가 우안(牛眼) 최영식.
▲ 한국화 작가 우안(牛眼) 최영식.
그가 우리의 도덕적 타락을 질타하는 듯 보이는 것도 우리 탓이다.온갖 악조건에서 보여주는 예술에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라고 하는 것이 옳다.그도 박수근처럼 초등학력이 전부다.지독한 가난과 과로 중,열네 살에 갑자기 청력을 잃었다.지금은 보청기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극빈의 환경과 이명의 고통 속에서 닥치는 대로 읽고 쓰고 그리며 오늘의 화업을 이루었다.그런 그가 우리를 또 놀라게 한다.작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예를 나는 그다지 보아오지 못했다.문인화 속에서만이 아닌 또 다른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의 예가 아닐까 싶다.이번 전시에서는 두 권의 책도 냈다.그림에 대한 글들을 모은 것이 책 한 권이 되었다.수필집 ‘바위를 뚫고 솟는 샘물처럼’도 냈다.문우들과 어울리며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글들인데,소설가 전상국의 평처럼 전문적인 식견이나 통찰 또한 보통이 아니다.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보여준다.전투기 굉음과 매미소리 가득한 한여름 고라니와 마주쳐서는 한참의 응시와 무심으로 시간이 흐르는 장면에서는,읽는 우리가 긴장으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소나무 전시를 크게 열면서 소나무 작가가 되었지만,그의 작품 세계의 본령은 원래 매화였다.지금도 여전히 보여주는 달이 걸린 매화가지와 꽃의 생생함은 남다르다.전통에만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한국화가 달을 다루는 법은 주로 홍운탁월(烘雲托月)이었다.구름을 그을려 달을 밀어낸다는 말이다.달은 희므로 수묵을 입힐 수가 없다.달을 그리기 위해 달만 남겨둔 채 어두운 구름으로 하늘을 그리는 방법이다.우안(牛眼)의 달은 그런 멋과 전통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린 수묵화의 달이 아니다.그의 달은 칠해진 달이다.수묵 필법을 살짝 바꾸어 놓았다.수묵의 농담과 붓으로 그려내는 매화가지 역시 전통 필법에만 갇히지 않는다.그렇게 그린 것이라 매화는,화선지 위에 그린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하늘과 달을 향해 꿈틀대는 생명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의 소나무는 유럽미술의 본고장 로마에도 알려졌다.로마 국립동양예술박물관의 전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1주일 체제여정이 그들의 열정적 관심과 서예 강의,한국화 시연으로 한 달이 넘도록 이어졌다.서로 너무 먼 곳이지만 똑같이 반도 한가운데며,소나무를 상징수로 가진 로마이기 때문이었을까.그보다는 먼저 소(牛)의 눈으로 소나무를 보고 제대로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가지가 뻗은 모양과 껍질의 상태로 나무를 볼 수 있는 눈,‘최솔거’라 불릴 만큼 소나무와 일체가 된 우안의 정열,그것으로 담은 그림이기 때문이었다.대자연의 거침과 웅장함을 원근법적 시선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 힘의 바탕인 뿌리와 생명의 속삭임을 소나무에서 듣고 그렸기 때문이었다.요즘 흔한 말,‘어루만지는 시각(haptique)’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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