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 박용종   춘천경찰서 남산파출소장
▲ 박용종
춘천경찰서 남산파출소장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필자는 1977년 전경으로 입대해 1979년 전역할 때까지 3번의 경찰의 날을 지냈다.1981년 경찰에 임용된 후 올 연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37번째 경찰의 날(21일)을 맞이하니 모두 40번째 경찰의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당시에는 경기도 부평에 있던 경찰종합학교에서 신임경찰관 교육을 받으면서 교내 체육관에 걸려있던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라는 글귀를 보면서 막연한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졌다.졸업 후 일선에 배치되어 하루 하루,한 해 한 해 근무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어느덧 정년을 2개월 앞두고 있다.

지난 40년 많은 일이 있었다.웃기도,울기도 하고 좌절도,후회도 하고 기쁨과 격려 속에 보람찬 시기도 지내왔다.돌아보면 1980년대 초임 순경시절에는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로 데모가 워낙 많았다.매일 진압복(당시에는 대나무가 들어있는 아주 무거운 방석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학생,시민들과 대치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최루탄가스와 돌덩이가 난무하는 현장의 버스 뒤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때는 서울로 동원되어 말도 안되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1개월 넘게 고생한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초임 순경때 문서 작성을 4벌식 타자기로 하다가 전동식 타자기에서 전자 타자기로,이제는 PC로 작성하는 시대가 됐다.우리경찰은 한때 권력의 시녀,민중의 몽둥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퇴근 후 동료들과 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우리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냐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그래도 묵묵히 앞만보고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일념으로 밤을 낮삼아 근무하고 1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함께 해온 동료 경찰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80,90년대초까지만해도 비번 당일 휴무를 정상적으로 갖지를 못했다.명절이면 비상근무로 남들 고향가는 뒷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면서 밤낮없이 근무한 것이 다반사였다.아이들의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집안 가족행사에는 어쩌다 참석하는 불성실한 가장이기도 했다.아이들에게는 아버지 있는 고아(?)로,아내는 남편이 있는 과부(?)를 만들고 오직 경찰이라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오는 21일은 제72주년 경찰의 날이다.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경찰도 많이 발전했고 변한 것도 사실이다.신입 경찰들은 평균 70~8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재원들이다.지식,용모,체력 어느 하나 뒤떨어지는 것이 없는 멋진 후배들을 보면서 경찰의 앞날이 더욱 밝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경찰인으로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었고 지금도 경찰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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