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인류가 ‘생각’이란 것을 할 때부터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이를 생각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진다.죽음은 ‘한 생명체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른다.그렇지만 여기에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지 않고는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없다’는 단서가 있다.죽음의 세계란 인간의 경험적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천수를 누리고 저절로 기능이 멈추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뜻하지 않은 원인으로 갑자기 죽음을 맞는 우연사 등 다양하다.사실 가장 억울한 죽음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원통하게 죽는 것이다.일찍 죽는 것(夭死),객지에서 죽는 것(客死),분하게 죽는 것(憤死) 등이 그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죽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려고 한다.‘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천대를 받더라도 이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공자는 한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삶에 대해서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에 관해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며 삶을 아는 것이 곧 죽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성경 로마서에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는 구절이 있다.죽음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죄로 인한 것으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원죄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고 했다.

1983년 입적한 탄허(呑虛)스님은 임종을 맞아 ‘여여(如如)하다며 할 말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죽음을 대하는 노승의 무심(無心)의 경지를 보여준다.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서에도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대목이 있다.삶과 죽음도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안에 있음을 뜻한다.

어제(23일)부터 품위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됐다.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 결정법’의 시행을 앞두고 23일부터 내년 1월15일까지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품위있게 살 수 있는 권리만큼이나 ‘품위있게 죽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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