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난방에 밀린 연탄, 그래도 서민들의 은혜로운 아이템
22공탄 지름 15㎝·무게 3.6㎏
난방비 부담 도시가스의 6분의1
추운 겨울 버티게 한 에너지원
가격인상 조짐에 소비자 불안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이제 연탄을 보며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운운하는 것은 진부해졌다.그만큼 연탄이 보기 어려워졌고 또 그만큼 구차해졌기 때문이다.버튼하나로 무소음,무진동,무향무취,무번거로움의 화사한 난방시스템이 가능한 문명은 한겨울이 무섭지 않다.그것은 마치 십중창 유리집 안에 앉아 악천후 속의 풍광을 찬탄하는 것과 같다.그리하여 연탄은 그저 가난과 미개를 뜻하는 형용사이자 종내는 사라질 변두리, ‘Esc’로 남게 된 것이다.그렇지만 여전히 계절은 돌아오고 그 겨울은 현실적이자 구체적으로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몰고 올 것이다.굶주림과 추위는 인간의 품위를 포기하게 만든다.그래서 에너지 복지라는 말이 나오고 연탄은 그 둥글고 뜨겁고 환한 훈기로 겨울의 등짝을 덥혀주는 것이다.


가을걷이,추수가 끝나고 서리가 시작할 즈음 한쪽 담을 빽빽이 차지한 장작과 곳간 가득한 몇 섬의 쌀,김치광 안에 김장독 서넛이면 빙하기라도 견딜 것 같은 시절,장작대신 연탄이 그 바통을 이었다.1960,70년대 연탄을 때면서 산은 푸르러졌고 나무들은 한숨을 쉬게 되었다.연탄은 석유곤로가 나오기 전까지는 난방과 함께 조리도구의 주역이 되었고 연탄난로는 실내의 습도조절도 해주는 다목적의 요긴한 장치였다.한겨울 햇빛이 들어차는 난로 위에는 칙칙 거리며 수증기를 뽑는 주전자나 비지찌개가 있었다.증기기관차 같은 그 소리는 실로 졸음을 불러왔다.바람이 얼음몽둥이를 휘두르는 북만주의 날씨도 이 감미로운 졸음을 만나면 만사휴의,따뜻하고 달기만 하였다.

어쩌다 어머니가 부재하면,남은 자녀들이 서로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불당번이 되기도 한다.하필이면 새벽 쯤,잠바를 걸치고 안방과 건넛방 연탄을 갈을라치면 종종걸음에 문고리가 얼어붙는 동장군에 자지러진다.간신히 화덕 뚜껑을 열고,발갛게 달은 두꺼비 집을 치우면 푸른 불빛을 뿜는 연탄이 빼꼼 타고 있다.연탄집게로 꺼내는데 재수가 나쁘면 아래 연탄하고 붙는 수도 있었다.다행히 잘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어떤 때는 둘이 들러붙어 안하무인이다.눈도 부시고 숨도 못 쉬고 고개를 돌리며 붙은 곳을 연탄집게로 탁탁 치다가 연탄이 반쯤 깨져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제 다 탄 연탄을 밑에 깔고 위로 새 연탄을 얹어야 일이 끝나는 데 불구멍을 맞추려면 이게 또 고역이다.외로 목을 돌려 큰 숨을 쉬고 숨을 참으며 구멍을 맞추다보면 맹렬한 불기운에 눈이 따갑고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보통 하루에 두 번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룻밤에 두셋 아궁이를 순례하다보면 잠은 벌써 저만큼 달아나곤 했다.그러다가 연탄불이라도 꺼지면 번개탄을 써야했다.그런데 이 번개탄이 또 걸작이었다.지금은 아래로 타는 제품 등 많이 편리해졌지만,예전에는 화약에 불이 붙는 듯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와 불꽃이 툭툭 튀었다.번개탄을 화덕에 넣고 어쩌다 보면 그야말로 포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의 길 잃은 병사 같은 상황이 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아랫목은 오래도록 따뜻했다.

잠시 겨울의 성자인 연탄의 출생에 대해 알아보자.알다시피 인도나 티벳쪽에서는 소똥을 말려 난방용으로 쓴다.손으로 소똥을 만져 적당한 형태를 만들어 썼다. 마찬가지로 연탄도 처음엔 각각 집에서 기계로 찍어 사용했다고 한다.19세기 말 일본 큐슈 지방에서 주먹 크기의 석탄에 구멍을 내서 사용되기 시작한 연탄은 일제하 조금씩 들여와 사용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들던 부산에서 사용되기 시작해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그러다 전문적인 공장이 생기고 지역마다 사이즈나 모양,구멍수가 달랐다.이후 표준안이 만들어져 소탄, 중탄, 대탄으로 구별되어 가정용과 업소용 등으로 나뉘었는데 현재는 22공탄,지름 15㎝, 높이 14.2㎝, 무게 3.6㎏인 일반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난방효율도 좋아 연탄의 월 난방비 부담액을 100으로 볼 때(2009년 기준) 실내등유는 359,보일러등유는 334,도시가스는 166 수준으로 연탄은 실내등유나 보일러등유의 3분의 1수준이고 도시가스의 60%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탄 가격은 2009년 이후 동결돼 왔는데 유통비를 포함한 소비자 가격을 500원에서 573원으로 14.6%를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지금까지는 정부에서 서민을 위해 석탄·연탄의 생산원가보다 낮게 판매가격을 고시하고 그 차액을 정부 재정으로 생산자에게 보조하는 식으로 지원하고 있다.지난해 기준으로 석탄은 생산원가의 78%, 연탄은 생산원가의 57%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2010년 G20에 제출한 화석연료보조금 폐지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연탄제조보조금을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다.그렇게 되면,연탄의 사용여건은 훨씬 열악해져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연탄은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하는 고마운 에너지원이다.연탄이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대중화 된 것은 전통의 구들장 문화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구들장 형태로 난방을 하는 민족도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값싸고 오래가고 저장성도 좋은 연탄은 서민들에겐 지금도 은혜로운 아이템이다.그런데 최근에는 석탄의 질이 예전만 못해 수입한 석탄과 섞어서 쓴다고 한다.채탄작업도 지하 2㎞넘게 파내려가야 하고 지열이 뜨거워 작업 효율도 떨어진다고 한다.석탄을 얼마나 캤으면 광산이라 하지 않고 탄광이라고 할까.이것만 봐도 한때 대한민국 산업의 박차를 가하는 어마무시했던 석탄력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연탄은 연탄재를 남긴다.연탄은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명이 상하기도 했으며,최근에는 자살도구로도 쓰이고 있다.동전의 양면이자 달의 뒷면 같은 것이겠다.물리적인 겨울날씨는 예전이 훨 혹독했지만,어쩐지 요사이는 마음이 많이 시리다.늘어나는 수명이야 나쁠 게 없지만 그만큼을 살아낼 노후자금,에너지가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세상에 믿을게 없어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고 한다.예전 새끼줄에 연탄 두 장 꿰어 봉지쌀을 들고 귀가하던 가장의 그림자가 지금까지로 길어지는 까닭이다.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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