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서 만나는 수국은 특별하다.숨이 턱까지 차올라 당장 주저앉을 것 같아도 수국 앞에서는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수국의 자태와 매력 탓이다.6~7월 깊은 산중에서 피는 수국은 산성 토양에서는 푸른색,염기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중성 토양에서는 흰색 꽃을 피운다.흰 꽃이 핀 수국 주변에 산성인 백반을 뿌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꽃 색이 푸르게 변하고,염기성 화학물질을 뿌리면 붉은 꽃으로 변한다.팔선화(八仙花) 또는 팔색조로 불리는 이유다.수정을 한 뒤엔 꽃잎을 180도 뒤집어 스스로 ‘결혼한 꽃’임을 알린다.

수국이 품은 내면의 기질은 더욱 놀랍다.꽃과 잎,뿌리를 모두 약재로 쓰는데 그 효능이 간단치 않다.허준은 동의보감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열이 날 때 효과가 있고 심장을 강하게 한다’고 했다.필로둘신(phyllodulcin)이라는 감미성분이 들어있어 설탕 대용으로 쓰기도.여름 더위를 극복하거나 혈액 순환,숙취 해소,다이어트,노화 방지,피부미용에 특히 좋다.사포닌과 루틴,게르마늄 성분이 다량 함유돼 당뇨와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폭넓게 쓴다.

색에 따른 꽃말도 다르다.푸른 꽃은 냉정,무정,거만을 뜻하고 붉은 꽃은 소녀의 꿈을,흰 꽃은 변덕·변심을 나타낸다.전체적인 꽃말은 변덕,처녀의 꿈!수국의 백미는 잎을 말려 만든 ‘차’에 있다.봄,가을에 연한 잎을 따서 햇볕에 말린 수국차를 ‘감로차(甘露茶)’ 또는 ‘이슬차’라 일컫는데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박하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향취를 느끼게 한다.피와 머리를 맑게 하고,다이어트에 효과가 큰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토종 허브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노동계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수국차를 선보였다.그는 “평창올림픽 때 외국VIP가 오면 선물용으로 주기 위해 만든 차”라며 차의 이름을 ‘평창의 고요한 아침(Serene Morning of Pyeongchang)’이라 칭했다.왜 하필 ‘고요한 아침’일까.피천득은 그의 수필 ‘인연’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현명한 사람은 옷긴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썼다.VIP면 대통령 또는 수상급일 텐데 ‘고요한 아침’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 아닌지….인연을 살리려면 첫인상이 깊어야 하는데….수국처럼!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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