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온 산하를 물들인다.단풍은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엽록소가 파괴돼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라 한다.우리나라 단풍은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는데 하루 평균기온이 15℃ 이하로 떨어질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한반도의 북단인 강원도가 단풍의 출발점이 된다.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처음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이 다 그런 까닭이다.

산의 정상에서 20%가량 물들었을 때를 단풍의 시작으로 보고 80% 이상으로 확산되면 절정기라고 부른다.올해도 어김없이 9월 하순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처음 물들기 시작해 하루 40m가량 산 아래로 내려오고 25㎞의 속도로 번져간다.해마다 3월에 봄소식이 제주도에서 북상하는데 단풍은 그 역순으로 남하한다.이미 제주 한라산까지 만산홍엽이고 이번 주말 설악산에선 단풍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맘때면 유명산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시절의 감상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진 모양이다.“멀리 스산한 가을 산의 비스듬한 돌길을 오르니/흰 구름 피어나는 곳에 인가가 있구나/수레를 멈추고 느긋하게 늦은 단풍 즐기노라니/서리 맞은 잎이 이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에 그런 정취가 전한다.

단풍이 한바탕 뜨겁게 타오르고 나면 한 해의 끝이 다가선다.“무서리 술이 되어 만산(萬山)을 다 권하니/어제 푸른 잎이 오늘 아침 다 붉었다/백발(白髮)도 검길 줄 알 양이면 우리 님도 권 하리라”속절없이 타오르는 단풍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가 보다.봄의 꽃소식이 모진 추위를 이겨낸 생명의 발산이라면 단풍은 그 화려를 접고 다시 거친 겨울을 맞는 수렴의 의식일 것이다.

사고가 잦은 것이 또 이 무렵인데 무리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 한다.“산에 가면서 앉는 것을 잊고 앉으면 가는 것을 잊다가/소나무 그늘에 말을 매어놓고 물소리를 듣네/내 뒤에 온 몇 사람이 나를 앞서갔는가?/모두 죽음으로 돌아가는데 또 어찌 다투려하는가?(山行忘坐坐忘行 歇馬松陰聽水聲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爭)” 조선의 팔문장(八文章) 송익필 (宋翼弼) 선생의 ‘산행(山行)’을 음미해 본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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