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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망(春望)'을 읽으며

노 화 남 논설고문

2003년 04월 14일 월요일
 전쟁터에서 총부리를 마주대고 싸우는 군인들이 화약 냄새에 섞인 피비린내를 맡으며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면 전쟁에 휩쓸린 민간인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두려움과 함께 절망을 느낀다. 지금 60세를 넘어선 사람들은 어린시절 6·25전쟁을 통해 이미 그런 두려움과 절망을 겪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춘망(春望)’은 언제 읽어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나라가 결딴나도 산천은 그대로 있어
  성터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
  시국을 생각하면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가슴 아픈 이별 새 소리에도 놀란다
  전쟁이 석달이나 이어지니
  집 소식은 천금같고
  긁을수록 흰머리 자꾸 빠져
  이제는 비녀조차 꽂을 수 없구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지는 이라크전쟁의 양상이 50년 전 6·25전쟁의 양상과는 사뭇 다르지만 피 흘리며 쓰러진 병사들과 화염에 싸인 건물, 겁에 질린 사람들의 표정, 피난민들의 무거운 발걸음, 점령군 병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손 내미는 철없는 어린애들의 모습에서 참혹한 전쟁을 또 한번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적군이 물러가고 수복된 삶의 터전에 돌아왔을 때 절망은 더욱 깊었다. 잿더미로 변한 삶의 공간에서 당장 끼니를 잇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흩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수소문하느라 하루 종일 귀를 열고 다리품을 파는 일은 슬픔이었다.
 그해 늦은 가을까지 핀 백일홍만 보아도 어른들은 외면하며 핏빛 전쟁에 몸서리를 쳤다.
 후세인의 결사항전 독려에 주먹을 불끈 쥐며 필승을 외치던 이라크 국민들이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미영 연합군이 진주하자 손을 흔들며 '부시’를 연호하는 모습은 차라리 애처롭다. 인민군이 진주하면 인공기를 걸고 아군이 입성하면 태극기를 내걸어야 했던 우리의 옛날 사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비극이다. 팔다리 잘린 사람들이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며 병상에 누워있지만 전쟁판에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나 의약품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은 평생 불구의 몸을 이끌며 불행한 삶을 이어가면서 전쟁과 전쟁의 주범들을 저주할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공습 장면과 시가전 장면 각종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에서 젊은이들은 전쟁영화를 보는듯한 스릴과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전율을 느낀다. 요행히도 살아남아 전후의 모진 궁핍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선진국 그룹인 OECD 회원국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그들은 지금 낡은 보수층이란 명찰을 달고 뒤켠으로 밀려나있다.
 가끔 보리개떡 주먹밥을 만들어 "이런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전후의 가난을 이겨냈다"며 젊은이들에게 권해보지만 달달한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요즘 젊은이들은 한 입 베어물어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여중생사망사건으로 전국 곳곳에서 반미시위가 일어나고 지금은 반전과 반미가 뒤섞여 '양키 고 홈’까지 나올 판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엊그제 한미 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가 있었고 주한 미군의 '특정임무’를 한국군에게 이양한다는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그 '특정임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전방에 주둔한 미군 2사단을 후방으로 배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후 반세기동인 북한과 대치하며 자주국방의 의지를 키워왔으나 미군이 빠진 자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카드로 내세워 평화 공존을 위협하는 시점이다.
 이라크전쟁이 강건너 불이 아니라는 나이든 세대의 느낌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역만리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이 섬뜩하고 종전에 가까울수록 난장판이 되어가는 이라크 국내사정이 딱하다. 그러나 더욱 섬뜩하고 딱한 것은 반미 대열에 끼지 않는 사람들을 무조건 보수 사대주의로 몰아가는 이 시대의 급진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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