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최초 한인극단, 예술 열정으로 민족정신 명맥 유지
원동변강조선극장으로 창립
1968년에 1급 국립극장 승격
아리랑가무단 창설 순회 공연
주요 레퍼토리 ‘아리랑’ 으로
고려인 사회 메신저 역할 수행
최고권위 ‘아카데미’칭호 획득
카자흐스탄서 민족 위상 우뚝

▲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위치한 ‘고려극장’에서 단원들이 창립 85주년 기념공연 준비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위치한 ‘고려극장’에서 단원들이 창립 85주년 기념공연 준비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1937년 9월부터 한달여간 열차를 타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한 ‘디아스포라’ 고려인의 숨가쁜 역사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전설을 꼽으라면 ‘고려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사실상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민족정서와 애환은 ‘고려극장’의 무대에 압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본지 취재팀은 최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고려극장’을 찾았다.최초의 해외 극단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한인공연단체인 고려극장 단원들은 이달 중 예정된 창립 85주년 기념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 강제이주 애환 달랜 종합예술단

고려극장은 1932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인 구락부 연극소조클럽이 주축이 되어‘원동변강조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그러나 고려인의 강제이주가 시행된 1937년 9월 옛 소련의 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와 우크베크 공화국의 타슈켄트 인근 빽제미르로 흩어져야했다.1942년 1월 13일 크질오르다의 고려극장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최초 정착지인 우슈토베로 옮겨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항일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희곡을 비롯 ‘홍길동’ ‘흥부와 놀부’ 등의 고전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낯선 땅에 정착한 고려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려극장은 1968년 카자흐 공화국이 수도인 알마티로 옮기면서 1급 국립극장으로 승격됐다.이때 별도의 공연팀으로 ‘아리랑가무단’이 창설되면서 소련 전역을 순회하며 드라마극과 노래공연을 동시에 선보이는 종합예술단으로 활발히 활동했다.가무단의 초대예술지도는 성악가 김블라디미르가 맡았다.가무단 창설 당시 합류한 한야코브(74) 작곡가는 이후 민족음악에 재즈를 가미한 획기적인 음악을 선보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그는 이후 1980~90년대 고려극장의 음악감독과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다.고려극장의 전반적인 무대공연은 남한과의 교류가 힘들었던 시대적 상황상 북한 출신 예술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당시 전문가수로 이함덕,방타마라에 이어 현재 고려극장 예술단장을 맡고 있는 김조야 등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 고려극장 로비에 설치된 전시관은 창립 85주년을 맞은 고려극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고려극장 로비에 설치된 전시관은 창립 85주년을 맞은 고려극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들 공연단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날에는 고려인들이 한데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는 잔치가 벌어졌다.

고려극장은 1980년대에 들어서는 단원수가 120여명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해 ‘아리랑’ ‘춘향전’ ‘심청전’ ‘양반전’ ‘홍길동전’ 등 한국의 고전과 현대적 주제의 ‘38선 이남에서’ ‘불속의 조선’ 등과 같은 작품을 뮤지컬 형식으로 선보이기도 했다.가무단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하는 ‘아리랑’를 주요 레퍼토리로 들려주며 고려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무대배경에도 ‘아리랑’이라는 글씨를 넣어 민족음악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야곱 전 고려극장 음악감독은 “드넓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벌인 고려극장 단원들은 고려인 사회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며 “고려극장이 아카데미 칭호를 받기까지는 이국땅에서 민족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초창기 선배단원들의 헌신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애환을 무대에 올린 고려극장의 ‘아리랑’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앞에서 관람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옛 사진이 이채롭다.  사진제공=아리랑박물관
▲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애환을 무대에 올린 고려극장의 ‘아리랑’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앞에서 관람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옛 사진이 이채롭다. 사진제공=아리랑박물관
■ 창립 85주년 카자흐스탄 최고권위 칭호

카자흐공화국이 옛 소련으로 부터 독립한 1992년에는 혼란기 속에서도 고려극장 창립 60주년 순회공연을 진행했다.1999년말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산하로 재편됐고 2002년 공연연습장을 겸비한 전용극장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지난 해말에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독립 25주년 기념식에서 고려극장을 직접 언급하며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칭호를 수여했다.

이로써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으로 불리게 됐다.이 칭호는 연중 공연횟수,배우들의 수상이력 등 22가지의 조건을 충족한 극장에만 부여된다.카자흐스탄의 130여개 소수민족의 공연단이 국립극장으로 격상되기도 흔치 않은 경우인데 ‘아카데미’ 칭호를 받은 것은 고려인 사회의 위상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극장은 현재 고려인 3세대부터 5세대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다.극장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고려인 이외에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의 입단도 점차 늘고 있다.단원은 98명이고 배우는 50명 가량이다.이들이 연극단,성악단,무용단,사물놀이팀 등으로 나눠 평균 일주일에 한편이상 무대에 오른다.장기 순회공연이 많아 한해 평균공연횟수가 80회에 이른다.모든 공연은 한국어로 하고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를 동시통역할 정도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성악가 출신 김조야 고려극장 예술단장은 “우리 극장은 해외에 상주하는 최초의 한인극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매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고려인들은 대부분의 공연에 울려퍼지는 아리랑 가락에 울고 웃으며 응어리진 한을 풀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조영길·박창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