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1975년 10월 14일,전국 각지의 신문들은 ‘영동고속도로 개통’을 대문짝 만큼 큰 사진과 함께 1면 머릿기사로 올렸다.신문들은 국토의 동∼서를 오가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는데 열광했다.영동·동해고속도로가 동시에 개통되면서 서울∼강릉이 종전 8시간 30분에서 3시간 30분으로 5시간이 단축됐고,서울∼묵호(현재의 동해시)는 종전 10시간에서 4시간으로 6시간이나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한동안 전국 신문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재벌급들이 영동지역 호텔부지 매입에 나섰다’ ‘아침에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이 서울의 점심 식탁에 오른다’ ‘당장 해수욕객이 두배로 늘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기사에서부터 ‘취약한 영동지역의 경제력을 서울의 상공력(商工力)이 압도해 버리는 역효과를 경계한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요즘말로 하면 ‘빨대현상’을 우려한 기사다.당시 도내 모지역 군수 인터뷰 기사에서는 “고속도로 개통 후 밀려들 도시의 퇴폐 풍조를 막기 위해 지역내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촌극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그로부터 꼭 42년이 흘러 동해안에 다시 교통혁명 신기원이 열리고 있다.내달 서울∼강릉 고속철도 본격 개통을 앞두고 시험운전에 나선 KTX 고속열차가 신설 철도를 시원하게 달리는 모습이 신문 1면에 잇따라 실리면서 기대 지수는 더욱 상승하고 있다.서울∼강릉까지 최단 1시간12분이면 주파가 가능하고,중간역 정차를 한다고해도 1시간 30분 이내 이동이 가능한 새 교통수단의 등장은 ‘멀고 먼’ 낙후에 몸부림쳐온 동해안 구성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흥분과 기대를 놓고 본다면 42년 전 영동고속도로 개통과 영락없는 판박이다.‘빨대현상’을 걱정하는 것 까지 꼭 닮았다.그런데 정확한 진단과 전망을 위해서는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들뜬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한번 되돌아 보자.42년 전의 기대는 지금 어느정도 실현됐는가? 자문자답해 보자니 갑자기 답답해진다.동해안은 여전히 수도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고,그런 제약과 한계로 인해 인구 감소와 투자 위축은 상대적으로 심화돼 왔다.

고속철도 개통 후에도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물론 한번에 4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막힘없이 정시에 운행하는 특급 철도교통수단의 등장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회를 유발하는 호재임이 분명하다.그러나 기대를 살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철도 이용자 입장에서 편의를 살피고 제반여건을 갖춰야 한다.서울 중심부까지 편리하게 이동하고,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서민들도 부담을 덜면서 이용할 수 있어야 동∼서 혈맥의 신설 효과를 살릴 수 있다.최명희 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양양공항의 전례를 들어 “비행기가 훨씬 빠른데도 손님이 끊어졌다”며 “서울역을 주 출발역으로 하고,2만7200원으로 예상되는 요금을 2만5000원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만약 개통 후 열차 이용객이 적다고 하면 4조원의 혈세를 들인 고속철도는 ‘올림픽을 위한 철도’로 전락하고 만다.서울∼강릉 KTX 철도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핵심교통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올림픽용(用)’ 이라는데 동의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관광·경제 철도를 한번 제대로 살려 보자는 생각으로 이 아침에 42년 전 신문을 뒤적여본다.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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