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권   2017년 강원펜문학상 수상자·시인
▲ 박영권
2017년 강원펜문학상 수상자·시인
민주주의의 실현에서 흔히 통용되는 다수결의 원칙도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이치나 도리인 순리에 따르는 기본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한다.순리에 역행해도 다수가 원한다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를 흔히 볼수 있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은 양 극단의 가운데가 중용이 아니다.옳은 것은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과 용기가 중용이라고 말했다.특히 문화발전 속도에 맞춰 매사를 쉽고 빠르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그리고 노인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는 노령화 지수가 14.5%에 달하고 있다.(2016년 통계) 이렇게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어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동작은 둔해지나 자기주장(아집)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이렇게 변화의 반비례로 발전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그 속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사소한 의견 충돌이나 자리다툼이 왕따를 시키기도 하고 정당한 의견임에도 소수의 인원이라고 무시당해 하소연을 하는 예를 종종 들을 수 있다.그래서 얼마 전 신문지상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경로당 약물 살인사건도 생기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순리에 따르지 않는 사소한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이 있듯이 도미노 현상처럼 악순환으로 번질 수 있다.

노인복지관에서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갈무리 무대에 공연 작품을 올리는 과정에 이견이 분분하다.여가 선용,건강 증진 ,자아실현을 위해 1년동안 애쓴 보람을 느끼며 모두 다 즐거워야 할 무대가 회원들간의 갈등의 불씨가 된다.회원 모두 끝까지 익히지도 않은 작품을 회원끼리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사람만 참여하라고 하는 경우다.

다수는 다른 곳에서 동시에 배워 왔으니 공연할 수 있다고 하고 소수는 배우지도 않은 작품이라 할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연 기회를 준다는 것은 형평성의 원리에 맞지 않다고 한다.일부강사는 본인이 가르치지 않은 작품이라도 예술작품이라서 무방하다고 부추긴다. 일부강사의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은 경연대회나 장기자랑도 아닌데 왜 갈무리 마당에 다른 곳에서 배운 것을 출연 시키느냐고 항의한다. 그 중에 기회를 노리는 측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에 표를 던진다.

지난2월 95세로 별세한 케네스 애로는 다수결의 원칙을 ‘불가능 정리’라고 했다.효율적 의사 결정 방식은 민주적이지 못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면서….그는 1972년 최연소(당시 51세)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물론 더불어 사는 사회라 무대에 올리더라도 그것은 소수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한 결과다.다수가 바라는 방향으로 추진되더라도 원칙은 아니라는 것을 강사나 집행자 측에서 인식을 하고 그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잘못된 인식과 오만으로 다수결은 소수에게 치명적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원칙을 무시한 독선은 자신에게도 파멸을 안겨준다.또 프로그램 집행자는 노인복지의 운영목적에 맞춰 매사를 실행 하려는 기본자세와 강사의 자질 향상과 노인들의 정서순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요구된다.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다수결의 원칙보다 순리가 앞서야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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