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남한산성’을 다시 펼친다.381년 전인 1636년,병자호란을 일으킨 청 황제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보낸 글에 이르면 참담 그 자체다.“…너는 명(明)을 아비로 섬겨,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다.(…)내가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 주겠다.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타이름이자 명령!그때와 지금,우리의 운명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교린지례(交隣之禮)!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事大),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字小) 예를 가리키는 외교 용어다.사대와 자소라는 말속에 ‘대,소국간에 우의와 친선을 통한 상호공존’의 의미가 담겨 있다.그러나 역사는 이말을 거부한다.대,소국간에 믿음(信)과 어짐(仁)을 허락하지 않고 약육강식 즉,힘의 논리만 인정했다.조빙사대(朝聘事大)의 역사!생존과 안전을 위해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헌상물을 바치던 조공(朝貢) 외교가 그러했다.이는 19세기 이전,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외교의 전형이었다.

국빈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보따리를 풀었다.“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다”며 한반도 정책에서의 ‘코리아 패싱’을 일축했지만 한미FTA 개정 협상과 관련,“무역적자 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또 최첨단 전략자산을 언급하며 “한국이 미국의 많은 무기를 구매하기로 한 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물론,선물도 없지 않다.‘미사일 탄두중량 제한’을 해제키로 합의,‘높은 수준의’ 미사일 독자개발이 가능해졌다.그러나 우리가 감내해야 할 짐이 너무 무겁다.

올해 작고한 미국의 국제문제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세계 최상의 지위’를 구가하고 있지만,국제 전략은 ‘한마디로 형편없었다’”고 했다.힘의 우위를 앞세운 무력 일변도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중국 한무제 때 문신인 사마상여 또한 “도덕의 길과 인의의 전통을 세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먼 곳의 백성을 어루만져 소원한 자가 절망하지 않게 하라”고 일렀다.그러나 조언일뿐,자국의 이익 앞에 초연한 국가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트럼프가 그걸 깨닫게 했다.벌써 겨울이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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