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더 깊어지면
양구 백자가 머리맡에 저 달빛으로 빚은 것이라 해도
어느 과붓집 창호지 훔쳐다 빚은 것이라 해도
어느 담벼락 허물어 밤새 빚은 것이라 해도
저 생(生) 국화로 문지르고
저 마른 국화 내음 잔뜩 밴 것이라 해도
아무 들녘 쑥부쟁이 몇 개 꺾어다 옮겨 심었다 해도  
또 한 번쯤 속아준다면

어느 집 뒤란 장독대의 그저 평범한 정한수 같은
양구 어느 계곡 돌부리에 부딪치던 물살 같은
내 밑바닥까지 다 보일 것 같은
어느 산기슭에 걸터앉은 저 기울어진 보름달 같은
어떤 침묵 같은
남의 속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맑고 투명한
저 양구 백자 달 항아리 하나!


강세환 시인·시집 ‘벚꽃의 침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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