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白雪)이 분분(紛紛)한 날에 천지가 다 희거다/우의(羽衣)를 떨쳐입고 구당(丘堂)에 올라가니/어즈버 천상백옥경(天上白玉京)을 미쳐 본가 하노라” 조선 중기의 문인 임의직(任義直)은 눈이 내리는 풍경을 이렇게 오롯이 노래한다.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이고 언덕 위에 오르면 하늘의 궁전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듯하다.눈은 하늘과 땅,자연과 인간의 경계마저 허물고 선경(仙景)을 선사한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첫눈을 기다린다.올해도 사흘 전 입동(立冬)이 지나면서 절기상으로는 이미 겨울의 경계를 넘었다.지난 주말 설악산 오대산을 비롯한 먼 산에는 어김없이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징표처럼 제법 눈이 쌓였다.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눈앞에 좀 더 가까이 체감하게 될 그 첫눈에 매달린다.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반드시 오고야 말 저마다의 첫눈을 고대하는 것이다.

조선 중기 문장가 유몽인(柳夢寅)이 눈 오는 날 풍경을 그린 대목이 보인다.어느 날 이춘영(李春英) 윤길원(尹吉元) 남이영(南以英) 3인이 성호선(成好善)의 집에서 눈 올 때의 즐거움을 논한다.한 사람이 뜻 맞는 두 세 사람과 강변 누각에서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하자,다른 사람은 절세미인과 더불어 누대에 올라 백설(白雪·춘추시대 악곡)의 곡조를 마음껏 읊는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동자(童子)에게 맛난 술을 짊어져 따르게 하고 친한 벗과 얼어붙은 강에서 설마(雪馬)를 타고 달리는 즐거움은 어떠할까? 나머지 한 사람은 이렇게 거든다.저마다 펑펑 눈이 쏟아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에 빠져든다.듣고 있던 성호선이 내 즐거움은 다른데 있다며 반기를 드는데,눈 쌓인 천산(天山·지금의 중국 신강)에서 10만의 기병을 이끌고 좌현왕(左賢王·외적)을 내쫓는다면 어떠랴? 한다.

먼저 말을 꺼낸 이춘영이 이에 술잔을 들어 말하기를,각자에게 다 즐거운 바가 있으나 칙우(則優·성호선의 자)의 호방하고 장쾌한 즐거움에 어찌 미치랴 했다고 한다.세월이 지난다고 첫눈을 기다리는 인정이 어찌 변하랴.이미 저 고산준령에 겨울을 포고한 눈은 언제든 이 거리로 밀려올 것이다.이번 주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춥겠다고 한다.첫눈이 올지도 모를 이 계절 그대의 일락(一樂)은 무엇?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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