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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80년, 아리랑 로드를 가다] 7. 고려인이 말하는 아리랑의 기억과 정신

고려인 고난 버티게 한 아리랑 “한민족 정체성 확인하는 끈 ”
러시아· 카자흐스탄인에게 고려인 상징 민족노래 인식
1980년대 연극 소재로 다뤄
현지 맞게 각색 ‘고려아리랑’
젊은층에 알려지길 기대
삶의 양식· 희로애락 서려
공동체의식 강화로 연결

박창현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대표적인 종합예술단인 고려극장의 원로배우들이 본지 취재진과 함께 공연영상을 보며 옛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대표적인 종합예술단인 고려극장의 원로배우들이 본지 취재진과 함께 공연영상을 보며 옛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1937년 9월 중앙아시아 일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이주 이후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해야 했다.바람과 흙먼지가 날리는 허허벌판에 물길을 내고 논과 밭을 일궜다.연해주에서 싸가지고 온 볍씨는 새로운 생명과 소망의 싹으로 뿌려져 갈대밭을 옥토밭으로 탈바꿈시켰다.그들의 억척스러운 삶은 마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민족의 한을 품고 있었다.강제이주 80년을 맞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힘’은 다름아닌 바로 아리랑정신이었다.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지에서 고려사람이 말하는 강제이주 80년의 삶 속에 녹아들어간 ‘아리랑의 기억과 그 정신’을 들어봤다.

■ 아리랑의 기억

중앙아시아 일대로 강제이주된 러시아 한인,즉 고려인들의 삶은 한민족의 슬픈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반도에 머물렀던 아리랑의 분포공간을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일대로 넓히는 ‘아리랑로드’를 열었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려인 후손이 강제이주 후 4세대까지 이르면서 점차 아리랑에 담긴 정신도 다소 퇴색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고려인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아리랑에 대한 기억과 기록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춰주는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최고의 종합예술단인 고려극장을 이끌고 있는 고려인 3세대 출신의 ‘인민가수’ 김조야(66) 예술단장(고려인 3세대)은 “고려극장의 역사는 고려인들을 웃고 울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0~80년대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과 연해주 등을 순회공연하면서 부르는 아리랑은 애국가나 다름없었다”며 “카자흐스탄인이나 러시아인에게도 아리랑은 고려인을 상징하는 민족의 노래로 인식됐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발행하는 고려일보 한글판을 담당하는 남경자(75·여) 주필은 “지금도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노래가 아리랑이다”며 “어린시절 사할린에서 성장할때는 나그네 설움,황성옛터 등을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현재 내가 칠십이 넘었는데도 한글판을 홀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리랑의 전승도 예전같지 않다는걸 알 수 있다”며 “젊은 고려인 후손들이 한글이나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아 민족신문인 고려일보 지면도 점차 카자흐스탄어나 러시아어 사용비중이 더 커지고 있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고르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청년부장은 “카자흐스탄 내 소수민족 중 고려인은 현지인들과 굉장히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지난 9월 이주 80년 행사도 성대하게 치뤘다”며 “생일잔치 등 고려인들의 대부분의 행사에는 아리랑을 불렀는데 젊은 고려인 후손들에게는 아리랑이 ‘슬픈의 노래’라는 인식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 웃고 울린 아리랑

1980년대 고려극장이 무대에 올린 최고 인기극인 ‘춘향전’의 주연을 맡았던 3대춘향이 출신 최 따찌야나(64)씨는 아리랑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

“1983년 공연된 ‘아리랑’(극본 태장춘·연출 바쓰꼬브)의 주연배우 이름이 ‘리랑’이었는데 대사 중에 남여배우가 안타까움을 나타낼때 ‘아~ 리랑’이라고 불렀다.아리랑은 노래뿐만 아니라 연극무대에도 자연스럽게 올려진 주소재로 다뤄졌다”

또다른 고려극장 원로배우 박 알렉산드라(63)와 최 마이야(58)씨는 “모든 공연이 한국어로 하기 때문에 어려서 한글과 한국어를 극장에서 배웠다”며 “중앙아시아 일대 순회공연은 보통 6개월여간 다니는데 다른 공연 보다 아리랑이 무대에 울려퍼질때면 고려인들의 희노애락이 한순간에 몰려오는걸 느꼈다”고 떠올렸다.

고려아리랑을 작곡한 한야꼬브 전 고려극장 음악감독은 “고려인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약동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아리랑만한 소재가 없다”며 “러시아풍의 재즈와 아리랑이 만나 현지에 맞게 각색한 고려아리랑이 정작 젊은층에서 제대로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고려인을 대상으로 사랑방한글학교를 운영하는 성진호 교장은 “한류가 전해지면서 해마다 한글교실을 찾는 고려인도 늘고 있다”며 “한민족의 정서와 한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방법 중 하나가 아리랑이다”고 소개했다.

진재정 카자흐스탄 알마티한인회 이사는 “고려인 3~4세대는 현지에서 학교와 취업,사회생활을 해야하는 성장과정상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옛부터 내려오는 관혼상제,명절,아리랑가락은 여전히 한민족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은 “아리랑은 집 떠난 이들의 옷깃에 묻어간 노래였다.그 갈피갈피 마다 그들만의 삶의 양식,희노애락이 짙게 서려있다”며 “고려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요소인 아리랑은 디아스포라에서 비롯된 고려인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더 강하게 만들고 은근과 끈기를 갖게 했다”고 말했다. 조영길·박창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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