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웅철   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 김웅철
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 저출산·고령화사회 극복

일본에는 ‘단카이(團塊) 세대’라고 불리는 노인층이 있다.1947년부터 49년까지 3년 동안 태어난 680만명의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키는데,인구분포가 덩어리졌다고 해서 ‘단괴’(단카이) 세대라고 한다.일본의 고도성장기와 쇠퇴기를 함께 해온 이들은 하이틴 패션,패스트푸드,뉴패밀리(핵가족),마이카 등 새로운 유행과 문화,시장을 창출해 왔다.이들이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됐다.하지만 단카이 세대는 예전의 노인들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젊은이들 못지않게 건강하고 돈이 있고 수십년간 직장생활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겸비하고 있다.그래서 이들을 ‘젊은 노인’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기도 한다.이들은 은퇴 이후에도 그들만의 새로운 고령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그 과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도 출현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의 문화에는 3가지 키워드가 있다.평생현역,나를 위한 ‘시활(時活·시간 활용)’ ‘종활(從活·웰다잉)’이 그것이다.평생현역은 평생 일한다는 말이다.은퇴 후에는 ‘8만 시간’(하루 자유시간 11시간×20년)’이라는 기나긴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취미생활을 하며 유유자적하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다.‘젊은 노인들’은 그래서 몸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려고 한다.생계를 위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일 없는 무료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이들은 알기 때문이다.그래서 현역 시절에 비해 한참 못미치는 처우에도 재취업을 마다하지 않는다.연금이 있어 낮은 임금도 선뜻 수용하는 ‘연금겸업형 고령노동자’들은 젊은이들보다 경쟁력이 있다.무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수입을 올리는 ‘로 리스크,로 리턴’(Low Risk,Low Return)형 창업도 인기이다.

또 지적 호기심이 강한 단카이 세대들은 ‘배움’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60대 이상 고령자들이 어학연수 등 해외 유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 도심 학원가에도 50세 이상의 장년층이 젊은 학생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한 때 꿈 꾸었던 할리데이비슨을 배우고 고령자 승마에 도전하는 등 남 눈치 보지 않고 젊음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단카이 세대와 기존 노인의 또다른 점이다.70~80년대 일본 청춘들을 열광시켰던 디스코 붐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부활하는가하면 황혼의 사랑을 찾아나서는 ‘시니어 싱글’ 덕분에 장년층 커플이벤트 사업도 성행하고 있다.시니어 할인요금제를 도입한 러브호텔도 등장했다.

자신의 묏자리를 스스로 정하는 등 장례를 스스로 준비하는 것(종활)도 이들 단카이 세대만의 신 문화이다.‘생전 계약’을 통해 자기가 죽은 후에 이뤄질 절차를 계약해 두고 자신이 죽고 홀로 남겨질 애완동물의 케어를 위해 ‘펫 신탁’에 가입하기도 한다.게중에는 개인의 삶을 스토리로 디자인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에필로그 드레스’(수의·壽衣)를 준비하거나 수천만원짜리 우주장례식을 계약하는 통큰 노인들도 있다.

고령사회를 사회가 껴안아야 할 부담이나 문제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그러나 일본의 젊은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즈니스와 문화의 긍정적인 면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정점인 ‘58년 개띠’들이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이들은 젊고 지식이 있고,재력도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젊은 노인’들과 닮은 꼴이다.우리가 일본의 단카이세대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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