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체험공원·철암탄광역사촌·선탄장
우리나라 산업역군 광부 역사 고스란히 남아있어

탄광촌 이야기

태백 겨울은 길고 춥다.겨울이면 아버지의 얼굴이 더욱 그립다.태백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광부다.탄탄한 어깨와 두껍고 바짝 마른 입술,시커먼 얼굴,거친손으로 볼썽사납던 아버지.정부의 석탄공사 폐업 조치에 따라 수년 내 탄광이 문을 닫으면 ‘광부’라는 두글자는 영영 사라진다.광부,아버지를 기억하고 탄광역사문화를 발굴·보존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광부인 아버지.그땐 미처 몰랐다.세상에서 가장 듬직했던 당신의 모습을.생사를 넘나드는 ‘막장’에서 ‘검은 노다지’ 석탄을 캤던 광부는 고도성장을 일궈낸 영웅이었다.석탄산업의 역사인 태백에는 손때 묻은 탄광유산들이 지천이다.그때 그시절 만감이 깃들어있는 아버지의 흑백사진 속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기차역이다.태백선에 소재한 간이역은 광부 인생의 출발점이다.

당시 청춘과 가장들은 생계를 위해 태백선에 몸을 실었다.먹지도,입지도 않고 한푼 두푼 억척같이 모은 ‘눈물의 돈’으로 기차표를 사 ‘기회의 땅’을 밟았다.태백선은 꿈과 희망을 열어주는 ‘소원선’이기 때문이다.

석탄산업의 상징인 철암역,국내 유일의 ‘스위치백(switchback) 열차’가 운행됐던 통리역,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추전역,태백산과 가장 가까운 문곡역,증기기관차나 비둘기·통일호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태백선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품고 그때 그시절로 안내하고 있다.

철암탄광역사촌도 광부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눈물의 현장이다.탄광전성기 광부들의 주거·생활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철암동은 하천 바닥에 목재 또는 철재로 만든 지지대로 주거공간을 넓힌 ‘까치발 건축물’로 유명하다.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광부들로 주거공간이 절대 부족해 까치발 건축물이 탄생했다.

▲ 사진들은 광부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눈물의 현장 철암탄광역사촌.
▲ 사진들은 광부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눈물의 현장 철암탄광역사촌.
사람 숨소리까지 들릴만큼 좁디 좁은 방에서 한가족이 거주한데다 많은 방들이 오밀조밀 빽빽이 모여있어 광부들은 집에서 조차 편히 쉴 수 없었다.역사촌 외부는 옛 그대로 보존돼 있고 내부는 실생활 모습과 아트하우스,야외 설치미술 전시관 등 문화역사체험 관광시설로 조성됐다.까치발 건물에는 선술집 등 서민형 식당이 있고 50~60년대 영화세트장을 옮겨다 놓은 듯 옛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태백체험공원도 탄광전성기 광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폐광된 탄광사무소와 탄광사택촌,체험갱도 등이 설치됐다.사택촌에는 배급소와 빨래터,상점 등 광부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실제시대별 주거시설이 복원돼 있다.사택에 기거하며 사용했던 각종 생활도구와 가구류 등도 배치해 당시 광부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석탄사업의 상징이자 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철암역두(鐵岩驛頭) 선탄장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지난 1935년 가동된 선탄장은 태백 곳곳의 채탄장에서 캐서 보내온 원탄을 선별하고 가공해 현장에서 쓸 수 있게 만들어 기차에 싣는 시설이다.‘검은 노다지’ 석탄가루가 수북히 쌓인 건물은 우리네 아버지·어머니의 고단했던 삶의 현장이다. 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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