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   시인
▲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
시인
그림책을 같이 공부하는 모임인 ‘어린이 책 읽는 어른 모임’에서 올 한 해 동안 읽었던 활동도서에 대한 서평을 써야했다.모임에서 읽었던 어린이 책 목록 중에서 일곱 권의 책을 선택해서 서평을 썼다.그 중 보림출판사에서 만든 그림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 요즘 우리사회에서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갔다.우선 그림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멧돼지 가족은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멧돼지들에게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이미 누군가가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지침서를 남겨 놓았다.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집을 찾아 나설 것.새로운 동네에 왔으면 분위기를 파악할 것.수상한 녀석들이 나타나면 일단 피할 것. 추운 계절이 오기 전 반드시 집을 마련할 것.이제 자리를 잡았다면, 친구를 초대해도 좋음.’등 15개의 지침을 따라 마침내 인간의 집을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나타내고 있다.책 소개에 나오는 말 그대로 ‘어쩐지 짠하고,어딘가 켕기는,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겨울나기를 준비할 때가 되면,언론에 고라니와 멧돼지의 도시 출몰과 농작물 피해상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그들이 우리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상황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많은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왜 그들은 산을 내려오는 걸까?.자연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와 늑대의 멸종으로,멧돼지와 고라니의 개체수를 조절할 수 없게 되었고,수가 늘어난 무리들 중 영역싸움에 밀려 난 그들이 인간의 마을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는 모범답안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출몰’,‘피해’란 단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파생된 매우 일방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편안한 생활을 위하여 도로를 내고, 산비탈을 깎아 전원주택을 짓고,건강을 위해 등산로와 올레길을 만든다.거꾸로 멧돼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그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인간들이 우리의 먹거리를 없애고,보금자리를 파헤쳤다.’라고 하지 않을까?

또한 최근에 반려견에 관한 문제가 한동안 사회의 이슈거리가 되었다.그 대책으로 입마개,목줄,벌금,펫티켓 이라는 단어들이 표출되었다.그러나 이 또한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나오는 해결방식이다.과연 반려견 입장에서도 그런 것들이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티타임즈(TTimes) 이재원 기자가 만든 ‘강아지가 인간의 친구가 된 슬픈 스토리’라는 기사의 내용을 요약해서 살펴보자.‘개의 조상은 늑대이며, 인간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3만년에서 1만 5천년전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산업혁명 후 개의 노동력이 필요 없어지면서 개의 역할이 바뀐다.재롱을 떠는 것이 개와 인간사이의 관계에서 더 중요해진 것이다.이때부터 인간의 취향에 맞춘 개량교배가 이루어진다. 산업혁명 후 200년 동안 350여종의 교배품종이 생겨난다.이 과정에서 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적 특징은 철저히 무시된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시추, 페니키즈, 퍼그,보스턴테리어 같은 단두종 강아지가 만들어진다.그 결과 이들은 안구돌출, 호흡 곤란, 음식섭취의 어려움을 평생 겪어야 한다.긴 허리와 짧은 다리를 가진 웰시코키와 닥스훈트는 허리디스크에 시달려야 하고, 눌린 코로 개량된 퍼그종은 평생 기관지 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이는 개의 선택과 진화가 아닌 인간의 선택에 따른 결과다.

따라서 사람과 동물사이 벌어지는 갈등상황이 단순히 멧돼지를 사냥하고 강아지에게 입마개를 시키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무엇(?)만으로 단시간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미봉책이다.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은 어디서 매듭이 꼬였는지를 알아내고,매듭부터 풀어야 한다. 무작정 실만 잡아당긴다고 풀리지 않는다.

동물과의 관계도 어떻게 해야 상생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 생태학적 차원에서 풀어가야 한다.그게 사람의 몫이다.이렇게 오늘 펼친 한 권의 그림책 속에서 나의 삶과 생각을 돌아보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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