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돌아보는 시간, ‘뷰레이크 타임’(ViewLake)을 거는 부녀
답답한 서울생활 접고 강릉 귀향
동해안 석호 18곳 소재 호기심
부녀 여행기 동아사이언스 연재
강릉현지인이 사랑한 여행지 담은 책 ‘강릉에 반할지도’ 제작 준비중

▲ 고기은씨가 아버지 고종환씨와 함께 사진전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 고기은씨가 아버지 고종환씨와 함께 사진전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을까.사라져 가는 동해안의 석호를 글과 사진으로 엮고 있는 아버지와 딸,고종환(56)·기은(32)씨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강릉에 다녀왔다.

-내가 떠난 강릉이 돌아오고 싶은 강릉으로

강릉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고기은씨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얼른 강릉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대학에 진학하며 그 꿈을 이뤘지만 서울의 고층 빌딩과 화려한 야경이 근사하기보다는 답답함으로 느껴졌고 사시사철 감기도 달고 살았다.탁 트인 풍경을 늘 그리워했다.어쩌다 한 번 고향에 내려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기반을 잡고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강릉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점점 확고해졌다.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다 퇴사를 했고 1년 간 하고 싶은 공부와 여행을 반복하다 모은 돈이 떨어져 무일푼으로 강릉에 돌아오게 됐다.

▲ 아버지 고종환씨와 딸 기은씨의 과거와 현재.
▲ 아버지 고종환씨와 딸 기은씨의 과거와 현재.
“서울에서 기반을 잡고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길 바라신 부모님의 기대와는 전혀 반대인 상태로 돌아온 거죠.고향으로 돌아와서 1년은 이기적일 만큼 저만 생각하며 살았어요.부모님은 늘 저를 ‘혼자 알아서 척척 잘하는 첫째 딸’ 로 보는데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저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힘든데도 괜찮은 척,아픈데도 괜찮은 척하며 산 것이 결국 탈이 나고 만 거죠.지금 생각하면 서른을 코앞에 둔 딸의 사춘기에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은데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더욱 끈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어요.철 없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더 가까워지고 그렇게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소소한 추억들이 마음에 자리하는 일상에서 조금씩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그러한 가운데 강릉을 더 아름답게 그려가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따뜻한 격려 속에서 함께 그려가고 싶은 꿈을 꾸게 됐습니다.”

▲ 고종환씨가 사라지고 있는 석호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 고종환씨가 사라지고 있는 석호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아버지와 떠난 석호 여행, 그 기록

성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니 가까운 곳에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그중에서도 전직 카메라 감독이었던 아버지 고종환씨와 방송작가였던 고기은의 마음을 끄는 곳이 석호였다.자주 가는 호수인 경포호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호라는 걸 알게 되고 강원도 동해안에만 18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부녀의 호기심이 발동했다.그렇게 석호 여행이 시작됐다.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 아버지는 사진으로,딸은 글로 석호를 기록하며 온전히 담으려 노력했다.석호의 잔잔한 풍경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석호는 파도나 해류 작용으로 해안선에 생기는 사주,사취로 입구가 막히면서 생성되었습니다.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있는 기수호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많은 생물들이 공존하는 호수죠.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서 철새들의 풍부한 영양공급원이 되어주기도 하고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동·식물의 ‘엄마 품’ 같은 곳입니다.”고기은은 석호의 몰랐던 가치를 알게 되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부녀가 함께한 여행기는 매주 한 차례씩 동아사이언스에 연재됐다.아버지는 사진으로,딸은 글로 호수를 담았다.

“그렇게 1년을 여행하고 잠시 휴재에 들어가던 때였어요. 아버지가 지인의 일을 돕다가 허리를 다쳐 갑작스레 수술을 하게 되셨죠.불과 며칠 전까지 함께 여행하며 자동차를 끌던 아버지가 휠체어를 끄는 모습이 너무 낯설더라구요.그때 아버지의 한마디가 저를 울렸어요.‘나는 너와 같이 다닌 시간이 좋았어.’순간 함께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연재한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 고기은씨는 지난 9월 강릉 독서대전에서 독립출판부스를 운영했다.
▲ 고기은씨는 지난 9월 강릉 독서대전에서 독립출판부스를 운영했다.
-뷰레이크(View Lake) 타임

책을 만들려고 보니 막막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무작정 강릉의 유일한 독립출판서점 깨북을 찾아 사장의 조언을 얻었고 디자인을 전공한 둘째 동생에게는 책 디자인을 부탁했다.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만든 ‘뷰레이크 타임’을 발간하자 지역주민들과 만나는 기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독립출판 축제와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문화프로그램 일환으로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도 열게 됐다.여행 글쓰기 강의도 시작해 수강생들과 여행기를 모은 또 한 편의 여행 독립출판물을 완성하기도 했다.초판으로 찍은 300부가 소진 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석호에 관심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얼마전 2쇄 개정판을 냈다.“여행이 책이 되고, 책이 여행이 되는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시작한 것이 ‘강릉에 반할지도’ 시리즈인데요.강릉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현지인이 전하는 여행책자 프로젝트입니다.현재 지역주민 9명과 함께 첫 번째 편으로 ‘현지인이 사랑한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자를 제작 중이에요.다가올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조금이나마 강릉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1편 제작 후,참여하고 싶은 지역주민을 지속적으로 모집해 시리즈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 한혜진   춘천이 품고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이 좋아 문화예술판에 들어오게 됐고 지역 예술가&지역 청년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현재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문화·관광기획을 맡고 있다.
한혜진
춘천이 품고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이 좋아 문화예술판에 들어오게 됐고 지역 예술가&지역 청년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현재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문화·관광기획을 맡고 있다.
고기은이 여행하며 글을 쓴지가 이제 3년째이다.여행작가로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행보이지만 지역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기에 앞으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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