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러시아 독립운동가의 대부 최재형을 아시나요?” 최재형은 노비출신으로 33세에 러시아 얀치해 지방에서 돈도 모으고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목축업과 농업을 하여 군에 납품하게 되어 많은 돈을 벌어 러시아 군으로부터 신임을 얻어 독립운동자금과 교육사업에 썼다고 한다.

이 때 최재형을 찾는 이위종(조선말기 귀족출신)은 1908년 4월경 1만루불의 독립자금을 내고 안중근은 국내계몽 운동 대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한다.러일 전쟁(1904년)직후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던 러시아도 한일 독립운동가들에게 관대했으므로 애국 인사들이 블라디보스톡에 몰려들고 있었다.이때 한인의 수가 20만명에 달한 가운데 이범윤,최재형은 동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최재형은 동의회 군자금으로 1만 3000루불의 자금을 쾌척했다.

이외에 이위종이 1만루불을 내고 6000루불이 수청지방에서 모금되고 각지로부터 군총100정이 수집됐다.

이때 미국의 윌슨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파리에서 그 회의가 개최하기로 하여 최재형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회의대표로 내정되기도 했다.

송성의 6·25참전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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