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먼 바다에서 출발한 맥, 큰 혈 맺은 대명당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주인공
고향 삼척 초곡마을 집 대부분 좋은 터
생가 인근 조부 묘소 상당한 풍수파워
대기업 오너들의 선영과 대등한 역량

▲ 황영조 선수 조부 묘소 맥로도.(빨간 선)
▲ 황영조 선수 조부 묘소 맥로도.(빨간 선)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 8월 9일(한국시간 10일 새벽),‘마의 코스’로 불리는 몬주익 언덕 아래 40㎞지점까지 일본의 모리시타 선수와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황영조가 막판 스퍼트로 모리시타를 따돌린다.선두로 주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7만 관중이 기립박수로 그를 맞이했다.태극기를 가슴에 단 황영조는 트랙을 돌면서 우승을 확신한 듯 두손을 번쩍 치켜들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했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 못했던 손기정의 한,올림픽 마라톤에 대한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42.195㎞의 레이스,고통의 순간마다 황영조가 떠올린 사람은 고향의 어머니와 손기정 선수였다고 한다.

풍수인들에게는 삼척하면 자동 연상되는 곳이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5대 조부모 묘소인 준경릉과 연경묘이다.필자도 이 묘소를 여러 번 간산한 적이 있지만 정말 궁금했던 곳은 황영조 선영이다.풍수적 인과 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오래된 묘소보다 당대에 발생한 일에 대한 인과관계가 명분히 드러나는 생생한 풍수현장이기 때문이다.

1995년 12월 17일 언론에 실렸던 기사내용이다.이동통신회사에서 시행하는 철탑공사 지점이 황영조의 할아버지 묘소 근처로 알려졌다.황선수 부친과 지역인사들은 외지의 지관을 초빙하여 현장을 답사하였다.지관은 “조부 묘소 인근에 철탑이 세워질 경우 황선수의 정기가 소멸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자,주민 20여 명은 공사현장을 방문하여 항의하였다.20여년 전,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풍수공감을 반영한 기사이다.

황영조가 태어난 삼척 초곡마을의 초입은 바다를 맞대고 있고 양쪽 산곡 사이에 50~60가구가 자리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동네 어르신께 황선수의 집을 묻자,손짓으로 가리킨 집이 눈에 단박 눈에 들어온다.단층 슬라브의 옥상 앞면에 올림픽 휘장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대문은 열렸으나 인기척이 없었다.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황선수 어머니가 김장을 담그고 있는 집을 알려주셨다.황영조 선수의 이름을 말하니,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분이 황선수 어머니였다.누가봐도 황선수 어머니란 걸 알 수 있는 빼닮은 모습이었다.

▲ 오륜기 휘장이 선명한 황영조 선수 생가. 좋은 터에 자리하고 있다.
▲ 오륜기 휘장이 선명한 황영조 선수 생가. 좋은 터에 자리하고 있다.

집터가 좋다고 하자,왼쪽의 빈터는 어떠냐고 묻는다.지금의 집을 헐고 두 채를 새로 지을 계획이란다.마을은 양쪽 산곡 사이의 협소한 터에 자리하여 외관적으로는 자리가 되기 어려워 보이지만 기실은 대부분의 집들이 좋은 터에 자리하고 있는 동네다.동네 뒤쪽 1㎞정도 떨어진 황선수의 선영을 가는 길은 포장은 되지 않았으나 차량이 진입할 수 있었다.막다른 빈터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황선수 어머니는 건너편 야산에 선영이 있는 지점을 가리키며 알려주셨다.황 선수 증조부모와 조모 묘소는 같은 산줄기의 위아래로 모셔져 있다.합장으로 모신 증조부 묘소는 자리가 되지 않아 후손들에게 풍수적 도움을 줄 수 없는 곳이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할머니 묘소가 나타났다.할머니 묘소는 자리는 되었지만 소지소혈에 불과하니 후손들이 근근히 살아갈 정도의 풍수역량이었다.황선수 어머니가 알려준 곳에서는 증조와 할머니 묘소는 눈으로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조부 묘소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곳이고 또한 비석이 없으니 외관상으로는 알 수 없는 곳이었다.그러나 필자는 조부 묘소에 이르자 이것이 바로 황선수 조부 묘소라 단정할 수 있었다.주위에 산재해 있는 여러 기의 묘소는 황선수 할아버지 묘소로 들어오는 맥로에 걸려서 자리가 될 수 없는 곳인데 황선수 할아버지 묘소만은 엄청난 풍수파워가 감지되는 대명당이기 때문이었다.

▲ 황영조 선수 조부 묘소
▲ 황영조 선수 조부 묘소

황선수 할아버지 묘소로 들어오는 맥로를 살펴보면 동해의 지평선 먼 바다에서 출발한 맥이 완만하게 우선(右旋)하면서 초곡마을 뒷산의 산등성이까지 올라온 뒤,가운데로 솟은 용을 따라 내려오다 큰 혈을 맺었는데 바로 이곳에 황선수 할아버지를 모셨다.황선수 조부 묘소는 엄청난 대명당이다.그 역량은 대기업 오너의 선영과 대등한 풍수파워를 지니고 있다.몬주익 쾌거에는 이 묘소의 풍수파워가 결정적 뒷심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황선수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영조를 임신했을 때,구름 속에 용이 날아오르는 태몽을 꾸었고 또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는 커다란 누런 구렁이 꿈을 꾸기도 했어요.”

황영조는 어릴 적부터 착하고 근성이 있는 아이였다.엄마가 땔나무를 하러 가자면 누나들은 싫다고 하여도,그는 한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힘에 부치는 큰 나무도 집에 까지 끌고 오곤 했다.애석한 것은 2005년에 별세한 황선수 부친의 납골묘는 흉지에 자리하고 있다.고향 선영에서 길지를 찾아 옮겼으면 하는 생각이다.본인에게 가장 많은 풍수적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 묘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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