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수사(修辭)가 아니다.말의 뜻 그대로 전 세계가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요즘세상이다.원하든 그렇지 않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불과 몇 십 년까지만 해도 이웃마을에서 혹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사태의 진상을 아는 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지금 어떤가.안방에 앉아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손금 보듯 한다.

일주일째 기세가 꺾이지 않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불 실황을 현장에서 지켜보듯 하고 이 나라 권력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그의 트위터를 통해 가감 없이 전달된다.그가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선포하면서 중동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는데 그곳의 민감한 기류 또한 그대로 전 세계에 전해진다.이웃집의 요즘 형편을 아는 이상으로 세계정세를 속속들이 공유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옛날 중국 노(魯)나라에 영(瓔)이라는 문지기의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이유를 물었더니 이웃 위(衛)나라 공자(公子)의 품행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가난한 집 이름 없는 처자가 웬 남의 나라 고관 걱정이냐는 비아냥이 돌아왔다.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송나라와 월나라·오나라의 사례를 들어 결코 이것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몇 해 전 송나라 대사마(지금의 국방장관) 환퇴가 죄를 짓고 도망 왔는데 그의 말이 채소밭을 짓밟아 농사를 망친 일을 상기시켰다.그 다음엔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친 일을 거론했다.기세에 눌린 이웃나라가 월나라에 아첨하기 바빴고 노나라는 미녀를 바쳤다.불운한 누이를 보러가던 청년들은 강도를 당해 객사하는 일이 벌어졌다.위나라 공자의 호전적 품행이 언제 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거였다.

춘추시대 사정이 이러한데 하물며 지금에 서랴.지구촌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 무관하다 말하기 어렵다.온 세상이 하나의 신경망으로 묶여 간다.이것은 상생(相生)의 고속도로인 동시에 암세포의 전이 통로가 되기도 한다.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각축하는 전 세계의 신경망이 집중된 곳이다.이웃나라의 작은 변화가 바로 우리나라의 운명과 연동된다.공존의 지혜가 그만큼 절실해진 세상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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