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중   문화평론가·국가혁신포럼 대변인
▲ 김경중
문화평론가·국가혁신포럼 대변인
하명중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혼자 도는 바람개비’가 강원도 주문진에서 촬영을 마치고 1991년 개봉된 바 있다.이는 1988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년소녀가장 수기공모전 입상작품집을 영화화 한 것으로 나와 관련된 모 기업이 입상자들에게 지급할 상금을 후원해 줌으로써 이 행사가 지속적으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면 필자가 한국어린이재단을 통해 어느 소녀가장과 결연을 맺은 것이 최초의 날갯짓이 되어 작게나마 나비효과를 일으켰다고 본다.책이나 영화제목도 소년소녀가장의 외롭고 힘든 삶을 모티브로 한 나의 졸시 ‘혼자 도는 바람개비’를 차용한 것이다.

“학교가 파한 뒤 운동장에는 버려진 바람개비 하나 남아 있었다/바람개비는 혼자 돌다가 빈손을 흔들며 울고 있었다/마른 풀잎 몇 개가 함께 흔들리며 저녁햇살 두세 올 풍금소리로 떨고 있었다/서산에 지던 해가 잠시 멈추어 돌다 지친 바람개비를 비춰주고 있었다”(혼자 도는 바람개비 전문)

나는 그 옛날 강원도 춘성군에 사는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가장과 결연을 맺고 매달 소정의 후원금을 보낸 적이 있었다.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그스름하고 수줍은 듯 발그레한 양 볼을 가진 귀엽고 순진한 시골소녀의 얼굴만큼은 아직도 또렷히 생각난다.3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니 그 어린 소녀는 지금쯤 40대의 어엿한 중년여인이 돼 있을 것이다.

요즘 TV광고에 나오는 지명도가 높은 아동구호단체만 해도 꽤 여럿이다.초록우산 어린이재단처럼 후원자와 수혜자가 서로를 알고 연락도 주고 받을 수 있는 결연형식을 1:1 후원이라 하며 이러한 1:1 후원을 주 기부채널로 활용하고 있는 단체에는 월드비전,세이브더칠드런,굿네이버스 등이 있다.반면에 유니세프 같은 기부 채널에는 그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1:1 후원이 없다.유엔의 산하기구로서 전 세계 아동구호단체 중 가장 잘 알려진 유니세프의 이러한 ‘차별 없는 구호정신’은 슬로건 자체만으로도 그들이 지향하는 기부문화에 대한 숭고하고 독특한 가치와 이념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전쟁,테러,질병,기아,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졸지에 고아와 난민이 되어 떠돌고 사망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이러한 구호 단체의 역할과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그러나 뚜렷하게 한정된 기부층이 전체 후원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 앞으로 넘어야할 산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쉬운 기부환경 조성과 기부문화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요구 된다.기부에 대한 심리적,공간적 거리 좁히기도 구호단체들이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이다.기부층의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자선냄비나 구호함,ARS 같은 물리적 접점 뿐 아니라 광고와 홍보,프로모션 등을 통해 기부의 당위성과 소명을 일깨우는 감성적 접점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들이 너무나 많다.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이를‘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표현했다.‘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있는 것 등’ 어디 그뿐이랴?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손편지 한 장 써 위로해 주는 것,어려운 이웃에게 나의 것을 나누는 것,조촐하지만 정성껏 손님 대접하는 것…이렇듯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소소한 선행과 기부만큼 더 확실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곧 성탄절이 다가 온다.여기저기에서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갖가지 자선행사도 열릴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지치고 힘들어 금방 멈출 것만 같은 ‘혼자 도는 바람개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온정을 불어넣어 주는 따스하고 행복한 12월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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