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얼얼하다.바깥출입이 꺼려지고 먹는 것조차 성가시게 느껴지는 매서운 한파.밥상이 자연스럽게 간소해진다.빵 몇조각에 커피 한잔이거나 뜨끈한 국밥 한 그릇!반찬이 없다고 투정부릴 상황이 아니다.간소한 밥상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이런 날씨엔 지난 가을에 거둬들인 고구마가 제격.화롯불이 없어 아쉽지만 오븐에 구워 동치미를 곁들이면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한 끼 식사로 충분.

고구마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당 지수(GI)가 낮으면서 포만감이 커 남녀 누구에게나 인기.비타민A로 변환되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풍부하다.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노화방지를 돕고,항산화에 도움을 준다.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향상시키기도.이런 효능이 인정돼 미우주항공국 NASA는 고구마를 우주시대 식량자원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조선시대 구황작물로 들어와 국민간식으로 자리 잡은 고구마가 우주식량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전래된 시기는 17세기 중엽.본격적인 경작 시기는 조엄이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이후다.식량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정조실록(1794년 12월 25일)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당시 호남 위유사(慰諭使)로 나간 서영보는 “조금 심어도 수확이 많고, (…)가뭄이나 해충에도 재해를 입지 않고,달고 맛있기가 오곡과 같으며,힘을 들이는 만큼 보람이 있으므로 풍년이든 흉년이든 간에 이롭다”고 했다.고구마 보급에는 학자들의 노력도 컸다.1766년 강필리가 감저보를,1813년에는 김장순·선종한이 감저신보(甘藷新譜)를 출간했다.서유구는 1834년 종저보(種藷譜)를 통해 고구마 재배법을 소개.

겨울이 깊어가며 고구마에 얽힌 추억이 새롭다.늦은 귀갓길 종이봉투에 담겨 가족 사랑을 확인시켰던 군고구마.한 때는 가난한 고학생들의 든든한 아르바이트로 인기 만점이었다.그랬던 군고구마가 거리에서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올 겨울엔 일부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얼었던 손 호호 불며 허기를 달래고 꿈을 키웠던 군고구마가 추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매캐한 연기 속에 폭신폭신 익어가던 그 사랑과 함께.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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