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공 구연호 묘소 ‘대명당’ 대기업 추동 역량 풍수적 뒷심
풍수파워 약화된 LG 구문 선영
사업 동반자 GS 허문 선영이 뒷받침
2005년 회사 분리 상보관계 사라져
능성 구씨 가족묘, 가문 최고 풍수
핵심 정혈 약간 벗어난점 아쉬워
지면상 만회공부터 구본무 회장에 이르는 직계 선영만을 언급하기로 한다.이해를 돕기위해 구문 5대의 성명을 기술하면,만회공(晩悔公) 구연호(具然鎬)-재서(再書)-인회(仁會)-자경(滋璟)-본무(本茂) 순이다.(구자경 이하는 생존).
많은 풍수가들은 이 묘소가 후룡인 방어산에서 낙맥한다고 말하지만,그 보다 훨씬 먼 곳에서 출발한 맥로가 장원한 행도를 하고 방어산을 경유하여 묘소 뒤에서 급하게 떨어지며 산자락에 대명당을 결혈하였다.이곳에 자리한 만회공의 묘소는 대기업을 추동할 역량의 풍수파워를 지니고 있고 좌우의 부인 묘소도 중견기업 이상은 추동할 역량의 혈처이다.
구문(具門)의 풍수파워가 약화되었음에도 LG호가 순항했던 것은 GS로 분리한 허문(許門)의 선영을 간산하면서 깨달았다.2005년 두 회사로 분리하기 전까지 LG의 깃발아래 두 가문은 사업의 동반자였다.즉,약화된 구문의 풍수파워를 허문의 선영이 뒷받침해 주었으니 그들은 사업뿐만 아니라 풍수에서도 상보(相補)적 관계였던 셈이다.2005년 양가(兩家)가 계열 분리를 하니 LG는 풍수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졌다.그 시기에 구본무 모친인 하(河)여사가 별세한 것이다.
2008년 1월에 별세한 하정임 여사는 18세가 되던 해인 1942년 구자경과 결혼하여 시부모를 모시면서 6명의 자녀를 키우고 8명의 시동생을 보살폈다.그러면서 평생 기업인을 내조하였으니 그 삶의 무게는 일반인들이 짐작키 어렵다.그런데 사람들이 정작 놀란 것은 유풍(儒風)이 짙게 남아있는 LG가에서 ‘종부(宗婦)인 하(河)여사’를 화장(火葬)하여 납골로 모신다는 것이었다.어떤 풍수가들은 이제 LG의 앞날은 기대할 것이 없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필자가 누차 밝혔듯이 화장으로 모셔도 그 발음(발복)은 매장과 동일한 풍수적 영향을 주는 것이다.하여사를 모신 LG의 가족납골당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