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승   강원도의원·행정학 박사
▲ 곽영승
강원도의원·행정학 박사
아침 일찍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 산에 올랐다.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내리는 눈이 한 점 소리 없이 산야를 덮고 있었다.이렇게 많이 쏟아지면서도 어찌 이리 조용할 수 있을까? 천지사방이 온통 내리는 눈뿐이었다.눈은 절대침묵과 고요 속에서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바꿔갔다.눈은 행복감을 주고 있으나 생색(生色)을 내지 않았다.쏟아지는 눈은 나를 적요(寂寥)의 섬으로 이끌었다.나는 세상과 아득히 멀어졌다.나는 그 고요와 적막에 젖으며 내가 좋아하는 반추의 시간을 가졌다.얼굴로 떨어지는 눈은 꽃송이처럼 나를 감싸주었다.산 아래 저 멀리서 자동차들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으나 오랜만에 갖는 이 평안과 안식을 뚫지는 못했다.눈은 자동차들이 달리는 회색 빌딩숲,그 속을 황망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순백의 향연을 선사했을까? 아니면 운전하는 데, 걷는 데 불편을 주었을까?

이른 아침이라 등산로에는 발자국이 없을 줄 알았으나 먼저 간 사람이 있었다. 좀 더 일찍 왔더라면 내가 첫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이 소소한 행복감을 더 느꼈을지 모르겠다.우리는 대부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보다는 선인(先人)들이 걸어간 길을 걸으며 살아간다.그러면서 때로는 전철(前轍)을 밟는 실수까지 범하기도 한다.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영웅적인 결단과 자질이 필요하다.그 길은 고통 불안 인내 절망 때로는 죽음이 함께하는 길이다.그래서 우리는 영웅들을 칭송하고 경애한다.

나와 같은 필부는 영웅들이 길에다 깔아놓은 실을 잡고 가면되는데 그 길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범인(凡人)들은 소소한 안일(安逸)에 만족하며 ‘미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은 삶이 아니라 견디는 것일 것이다. 늙어가는 나는 남은 인생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눈이 선사한 고적함,고독의 미감(美感)에 젖어 망상을 가져봤다.

우리사회는 영웅이 없다고들 한다. 있던 영웅도 죽이는 사회가 돼버렸다고도 한다. 영웅이 되려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영웅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영웅들은 아이들에게 일생의 모델이 된다.닮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부족한 점이 있어도 우리는 영웅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니체는 “안락은 인간을 조소,경멸의 대상으로 만든다.인간은 고난으로 인해 성숙해진다.번민의 깊이에 따라 인간성의 깊이도 결정된다.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세계는 빈약하기 그지없다.그리스인들은 인간의 공포와 처참함을 알고 있었다.그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그 공포와 처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올림프스의 신’이라는 몽환의 소산을 내놓았다.그 소산은 빛나는 발명이었다.”고 읊었다.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불고 눈이 녹아 걷기에 불편했다.나뭇가지지가 흔들렸고 쌓였던 눈이 떨어지며 얼굴을 때렸다.찬바람이 귓속까지 들이쳤다.이 바람소리는 방황하는 자의 탄식인가? 새로움을 다짐하는 자의 결기의 기합소리인가? 인생은 사인곡선 이라고 했던가? 달콤함을 맛봤으니 조심조심 신경을 곧추세워 지팡이에 의지하며 산을 내려왔다. 새해에는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나은 삶으로 정진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