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아 술자리를 자주 접하게 되는 요즘이다.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고역의 시기다.필자 또한 기자생활 30년이 다 돼가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역시 어쩔 수없는 부분이 있다.얼마 전 회사에서 지난 1년 간 운영해 온 위원회 활동을 마치면서 외부위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겸한 송년모임을 갖게 됐다.이런 자리에선 술 실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단련의 힘으로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이 체질은 감출 수 없다.줄담배와 두주불사의 술 실력이 곧 기자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다 지나간 얘기다.요즘 기자들은 음주 흡연 가릴 만큼 다 가리는 것 같다.화제는 술 실력도 타고 나느냐로 옮겨갔다.오 씨 성을 가진 위원장의 술 실력이 만만치 않았는데,그럼 주량에도 집안 내력 같은 게 있느냐는 것이다.

관가든 재야든 내로라하는 호주가들은 금방 소문이 난다.도청에서 술 잘하는 간부 중 오 씨가 있었고,경제단체 과장을 지낸 오 씨도 술로 이름을 날렸다는 얘기가 나왔다.멀리 갈 것 없이 회사 안에도 술이 세기로 이름 난 몇 사람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성씨다.수많은 성씨 가운데 찾아보면 왜 이 방면의 고수가 왜 없을까 마는 돌아본 즉,유독 오 씨 성을 가진 실력자들이 이렇게 두드러졌던 것이다.

조선 숙종 때 강원도 관찰사와 양양부사를 지낸 오도일(吳道一)도 애주가였다.그의 문장을 아낀 임금이 과음을 말라고 충고할 정도였다.말이 나온 김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자 코끝이 발그레한 그의 초상화가 뜬다.정조 때 식년시(式年試)에 3등 급제한 오태증(吳泰曾)은 그의 손자뻘인데 학문 못지않게 술로 한 이름을 날렸다.과음으로 입시하라는 왕명을 지체하다가 추고(推考) 당한 일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정조가 젊은 유생에게 주연을 베풀었는데 오태증은 큰 잔으로 5잔을 마셔도 취할 기미가 없었다.신하가 대제학을 지낸 오도일의 후손인데 집안대대로 술을 잘 마신다고 아뢰자 임금은 이곳 희정당(熙政堂)이 오도일이 취해 쓰러진 곳이라며 웃었다고 한다.끝내 연거푸 다섯 잔을 더 마신 뒤에야 쓰러졌고 임금은 그 자리에 편히 쉬게 배려했다 전한다.이런 역사를 보면 내력이 없다하기도 어렵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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