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목회 동반자…기부에 대한 닫힌 마음 열리길”
결혼과 함께 구세군학교 임관
떠도는 삶 숙명 불편함 없지만
첫째 아들 사춘기 시절 미안해
마이크·딸랑딸랑 종소리에도 이해해주는 상인들 항상 감사

올해로 35년간 구세군 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봉석(61),유춘희(58) 부부.이웃에 온기를 전하기 위해 부부 사관은 또다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거리 한복판으로 나섰다.

“무심코 생활하다 저 멀리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그게 바로 구세군 냄비가 가진 진짜 힘인 것 같아요”

이씨 부부는 예전에 알고 지낸 지인에게서 느꼈던 순박함이 강원도에 대한 인상의 전부였을 만큼 강원도에는 전혀 연고가 없다.그런 이씨 부부가 올해 2월 춘천 석사동에 위치한 구세군춘천교회에 터를 잡고 목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2월1일 명동거리에 구세군 냄비를 설치하고 첫 모금활동을 시작했다.생각보다 유동인구가 적어 모금활동이 어렵지만 딸랑딸랑 종소리와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에도 군말 없이 이해해주는 주변 상인들의 협조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중매로 인연을 맺은 이씨 부부는 결혼과 함께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학해 1983년 임관했다.고교 시절 친구의 전도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남편 이봉석씨와 제복을 입은 여사관에 대한 선망으로 어린시절부터 사관을 꿈꿨던 부인 유춘희씨는 그렇게 만나 긴 세월을 함께했다.

35년간 24시간을 함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부부지만 목회활동과 자선사업으로 분주하게 사느라 정작 부부로써 오붓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고.구세군 사관으로서 힘들 때도 많았다.그럴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말 그대로 동반자다.

각각 경남 마산과 포항 출신인 이봉석,유춘희 부부는 충남 아산,서울 강동구 길동,경기 평택,전북 정읍 등 전국을 돌면서 목회활동을 펼쳤다.

▲ 35년간 구세군 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봉석(61)·유춘희(58·사진 위) 부부.
▲ 35년간 구세군 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봉석(61)·유춘희(58·사진 위) 부부.
떠도는 삶이 숙명이라고 생각해 딱히 불편은 없었지만 사춘기를 힘들게 보냈던 자녀에게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교에 진학할 당시 사춘기가 찾아왔던 첫째 아들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며 전혀 다른 환경에 유독 아픈 사춘기를 보냈다.그 고비를 잘 견디고 이제는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들이지만 부모로서 그때의 미안함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동안 구세군 모금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 중 하나는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천호동에서 사관으로 활동할 당시 한해도 빼놓지 않고 100만원을 놓고 간 익명의 기부자다.

5만원짜리 빳빳한 새 돈으로 100만원을 채워 한해도 빼놓지 않고 구세군 냄비를 찾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이씨 부부와 마주칠 기회가 없어 성별과 나이대조차 알 수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하게 익명의 기부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수수한 차림의 보통의 중년부부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없이 구세군 냄비에 기부금을 넣었고 이씨 부부는 그저 말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부금이 줄어들지만 구세군 냄비는 해마다 목표액을 초과달성했을 만큼 사람들의 신뢰가 깊다.인터넷과 전화 등 모금방법이 다양해졌지만 빨간 냄비에 직접 손을 뻗어 이웃에 대한 마음을 전하는 구세군 냄비가 가진 정취는 기부금의 액수 그 이상의 것인지 모른다.

모금 단체의 횡령과 최근 이영학 사건 이후로 ‘기부포비아’가 확산되며 어느 때보다 싸늘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이씨 부부는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 건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모금에 대한 철저한 사명감을 갖고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경에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구세군 냄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의 말을 남겼다. 노현아 now7310@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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