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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질문, 촛불의 미래

원행스님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강원도종교평화재단 사무총장
▲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강원도종교평화재단 사무총장
12월 달력을 보다가 20일이 빨간색으로 인쇄돼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이 꽤 많았을 것이다.그날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일로 예정된 날이었다.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말미암은 ‘촛불’과 탄핵이 없었다면 지금쯤 새 대통령 당선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달력을 인쇄할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그만큼 지난해 촛불은 정치지형을 일거에 바꾸어 버릴 만큼 역동적이었다.동시에 정부 수립 이후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는,평화와 축제의 아우성이었다.그 결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국정농단 세력은 영어(囹圄)의 몸이 됐으며 정권은 교체됐다.그러면 촛불은 완결된 것일까?

촛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그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1600만 시민들이 외쳤던 것은 몇몇 세력의 단죄가 아니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촛불의 의미,촛불이 우리에게 던졌던 메시지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다.촛불은 세대와 지역,이념을 넘어선 평범한 시민들이 주도한 사회운동이었다.촛불은 횃불과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횃불이 선동적이라면 촛불은 소녀적이고 가녀리다.하지만 그것이 응축될 때 횃불 이상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겨울 보았다.때문에 저항보다는 문화적 축제의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

IT 시대에 걸맞게 SNS가 주요 소통 수단으로 활용됐으며 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되는 낡은 체제(앙시앵 레짐)의 청산을 요구했다.그를 통해 새로운 정치와 경제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었다.더 중요한 것은, 몇 달 동안 이어진 집회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없는,비폭력 평화집회로 이끌었다는 점이다.촛불의 이러한 특징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지난 10월 독일의 대표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으로부터 인권상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재단 측은 “역동적인 민주주의 실현은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보장된 인권을 전적으로 향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준 계기가 됐다”고 했다.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최근 몇 년 간 우리 국민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정의’라고 할 수 있다.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와 존 롤즈의 ‘정의론’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였다.그만큼 우리가 공정한 사회에 목말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광복 이후 70여 년 동안 누적된 적폐는 온 국민을 짓눌러 살기 힘들다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이 적폐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박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해 주요 사회지표가 OECD 가입국 중 최하위에 떨어지게 만들었다.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적폐청산 작업을 하고 있지만 실은 빙산의 일각을 제거하는 것에 불과하다.지속가능한 발전,경제민주화,노동시장의 개혁,복지국가의 구축,시민민주주의의 확립 등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촛불의 의미에 대해 학문적,정치적,역사적 관점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그를 통해 해답을 찾고자 하는 치열한 참구(參究)를 놓으면 안 된다.그러지 않으면 불행의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되고 말 것이다.4·19가 5·16으로,87년 6월항쟁이 군사정권의 연장으로 귀결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없었고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이 없었기 때문이다.부처님 경전인 ‘중아함 아리타경’에 보면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촛불도 마찬가지이다.이젠 촛불 이후의 어젠더, 즉 ‘포스트(Post)-촛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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