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수년전에 춘천에서 외국인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피고인이 도로변에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로 세워져 있던 타인의 차량을 발견하고 10m 가량 운전하는 도중,이를 목격한 차량 소유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제지하자 그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사안 자체가 매우 단순했고 피고인은 자백하고 있어 재판 절차 또한 전혀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이러한 경우 제1회 재판기일에서 인정신문(피고인 동일인 여부 확인 등),

검사의 공소사실(피고인의 죄가 어떠한 것인지 설명) 낭독,이에 대한 피고인 자백 여부 진술,증거조사,피고인 신문 등을 진행하는데 10~20분,제2회 재판기일에서 판결 선고하는데 약 3~5분 정도면 끝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우리나라에 별로 입국할 일이 없어 보이는 예멘 사람이었고 그곳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다.그렇다면 피고인이 우리나라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랍어 통역을 구해야 했다.문제는 강원도 내에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아랍어 통역이 있었기는 하나 그는 이미 이 사건에 노출돼 있어서 이 재판에서 통역으로 쓸 수 없었다.수소문 끝에 겨우 강원대에서 공부하던,아랍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분을 통역으로 구해 재판을 시작했다.이 통역인은 자국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분으로 보였고 재판 과정에서 상당히 협조적이었고 다소 어눌하기는 하지만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재판을 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문제에 노출됐다.우리나라 법용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예를 들어 우리 재판부가 재판을 시작하기 위해 인정신문을 하므로 이를 피고인에게 통역해달라고 통역인에게 얘기했다.하지만 통역인은 이를 피고인에게 전달해주는 대신 우리에게 인정신문이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우리는 매우 긴 시간 동안 통역인이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줘야 했다.이와 같은 과정은 공소장,피의자 신문조서,진술조서,집행유예 등 법용어가 튀어나올 때마다 되풀이 됐다.결국 통역인이 피고인에게 전달해주는 시간보다 우리 재판부와 통역인 사이에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이는 국가적으로 보면 상당한 인력·예산 낭비다.당해 시간 동안 이 사건 대신 10개 이상의 사건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현재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해 거주하고 있고 그에 비례해 민·형사사건 모두 증가하고 있다.그런데 이들이 외국인이라고 하여 이들에게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는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부여돼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로서 외국인 사건 당사자에게는 어찌보면 정확한 통역을 받을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변호사가 옆에서 조력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보완하기 위해 우리 법원에서는 지난 달 14일 강원도내에 상주하는 통역인과 번역인들을 초청,법률교육과 형사모의재판을 실시했다.교육 내용은 법률용어 및 재판절차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췄다.법률용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재판 절차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외국인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재판절차 또한 정확·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또한 형사모의재판을 진행함으로써 이들에게 아쉬웠던 부분,개선할 부분을 설명하고 실제 재판 때 적용할 점을 모색해봤다.다만 그날 참석자들이 영어,중국어,일본어 통역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지금도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앞으로는 통역인과 번역인들의 교육을 더욱 강화해 외국인이 당사자인 재판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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