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 꿈 이뤄줄 후배 위해 최고 무대 준비했다”
2007년부터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약
2012년 세계선수권서 부상… 은퇴 결심
국내 최초 썰매종목 국제심판자격 획득
예산수립·트랙조성 등 올림픽 준비 심혈

김태래 매니저는 한국 스켈레톤의 ‘스타트’와 인연이 깊다.한국 스켈레톤 선수 1세대였고 한국 최초의 스켈레톤·봅슬레이 국제심판이었고 한국의 첫 슬라이딩센터를 맡아 시설관리에도 나서고 있다.
▲ 김태래 매니저는 한국 스켈레톤의 ‘스타트’와 인연이 깊다.한국 스켈레톤 선수 1세대였고 한국 최초의 스켈레톤·봅슬레이 국제심판이었고 한국의 첫 슬라이딩센터를 맡아 시설관리에도 나서고 있다.
1989년생 만 28살의 청년이 스켈레톤 종목에서 국가대표출신,국제심판자격을 갖춘 11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다면 누가 믿을까.김태래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매니저의 이야기다.김태래 매니저는 한국 스켈레톤의 ‘스타트’와 인연이 깊다.한국 스켈레톤 선수 1세대였고 한국 최초의 스켈레톤·봅슬레이 국제심판이었고 한국의 첫 슬라이딩센터를 맡아 시설관리에도 나서고 있다.올림픽이란 썰매를 타고 스타트를 넘어 힘찬 주행을 시작한 김태래 매니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평창 현지에서 김태래 매니저의 하루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봅슬레이,루지대표팀이 내달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슬라이딩센터에서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 해가 뜨기 전부터 얼음정빙에 나서야한다.자정까지 해외 아이스메이커 15명,국내 30명과 2교대를 하며 얼음정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국가대표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올림픽 당일 수준의 90%가량 얼음정빙을 해놓은 상황”이라며 “1월말까지 얼음정빙 100%를 완료할 예정이고 또 그때까지 해외아이스메이커들의 노하우를 국내 메이커분들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라도 현재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고 전했다.그는 이어 “어제(3일)는 직접 해외 아이스메이커를 모시고 오기위해 인천공항까지 픽업을 다녀왔다”며 “선수들의 경기력,편의를 위한 시설에 집중하고 있다.제가 조금더 노력하면 선수들이 올림픽 당일,경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해외아이스메이커와 트랙 얼음정빙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김태래 매니저.
▲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해외아이스메이커와 트랙 얼음정빙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김태래 매니저.
그가 선수들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누구보다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 또한 선수출신이기 때문이다.평창올림픽 유치전이 한창이던 2006년.당시 17살의 김태래 씨는 평창 용평에서 올림픽 유치기원 비인기종목 육성사업으로 시작한 스켈레톤·봅슬레이 꿈나무 육성프로그램을 보고 덜컥 지원했다.이후 2007년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현 이용(강원도청)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 등과 함께 밑바닥부터 기반을 닦아왔다.이후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경기에 나서다 스타트 라인에서 그루브 날이 빠지는 사고를 당하며 은퇴를 결심했다.그래도 스켈레톤 종목에 기여하고 싶어 2012년 은퇴후 6개월동안 벼락치기 공부로 우리나라 최초 국제심판자격을 획득했다.그는 “제가 선수생활할 당시는 아스팔트에서 훈련하던 시절이라 선수층이 얇아 봅슬레이선수로도 활동했다”며 “그래도 7년간 선수생활을 하다보니 덕분에 국제심판자격도 수월하게 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2007-2008 시즌 당시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유럽컵 1차 대회에 참가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사진 뒷줄 왼쪽부터 이기로,김정수,조인호,김태래(당시 화수고),이용(현 국가대표 총감독).사진 앞줄 왼쪽부터 강광배 감독과 한스요르크 슈바이처 코치.
▲ 2007-2008 시즌 당시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유럽컵 1차 대회에 참가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사진 뒷줄 왼쪽부터 이기로,김정수,조인호,김태래(당시 화수고),이용(현 국가대표 총감독).사진 앞줄 왼쪽부터 강광배 감독과 한스요르크 슈바이처 코치.
2014년 그는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매니저로 활동하던 친구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돼 단번에 합격,매니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이듬해인 2015년 7월 슬라이딩센터 터닦기 공사가 시작됐고 평창조직위에 경기장 운영부가 신설되며 현재까지 슬라이딩센터 시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시설 매니저로 활동하며 우여곡절도 많았다.국내에 없던 시설이라 설립예산,유지에 필요한 상수도요금,인력비용까지 어느 것 하나 새로 시작해야하는 일 투성이었다.하지만 그는 “후배 선수들이 평창올림픽에 집중할수 있게 하자”는 신념하나로 트랙조성,컨트롤타워 운영 등 선수를 위한 시설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그는 “제가 나이는 어려도 송진호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님이나 이진희 코치님보다도 먼저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며 “슬라이딩센터의 완공된 모습을 보고 후배 선수들이 부러워 질투도 하고 그랬는데,‘선수는 아니지만 올림픽 선전에 한몫을 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태래씨의 꿈은 평창동계올림픽과 그 후에 방점이 있다.금빛 메달을 통한 평창의 성공을 넘어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러시아를 보면 2014년 소치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선수들이 성장,금메달 4개를 획득했다.4년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에는 세계최정상급 라이징스타들이 배출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평창올림픽이 중요하지만 2022년 베이징올림픽이나 그 이후까지 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의 저변이 넓어져 세계정상급 실력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호석 kimhs8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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