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화재 현장에서 이승과 저승,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다.그러나 세 모녀를 비롯해 6명이 숨진 종로구 서울장여관과 29명이 숨진 제천 스포츠센터엔 비상구가 없었다.삶의 길인 이승으로 가는 문이 닫혀 있었던 것.제천스포스센터는 아예 비상구를 폐쇄했다.서울장여관은 또 어떤가.자물쇠가 틀어막은 비상구는 그 누구에게도 희망이 되지 못했다.이런 현장에 아무리 뛰어난 소방관이 나타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화재 발생과 함께 상황 종료!저승과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참사가 빚어진 ‘종로 서울장여관’은 이곳 뿐일까?아니다.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다.춘천,원주,강릉을 비롯해 강원도 곳곳에 들어선 여관,모텔,여인숙의 다른 이름이 ‘종로 서울장’이다.벌집처럼 꾸며진 숙박업소에선 비상구는 물론 스프링클러도 찾을 수 없다.라이터만 켜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할 건축자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건물들.그 곳에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다.낡은 소화기와 꽉 막힌 비상구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건축법과 소방시설법도 소용없다.‘법’은 내팽개쳐도 무방한 여름날의 외투일 뿐.

화재가 날 때마다 우리는 많은 죽음과 마주한다.지난해 10월 강릉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강릉소방서 故이영욱 소방위와 故이호현 수방사가 순직했다.그 죽음 앞에 우리는 인력과 장비부족을 호소했다.그렇다면 제천과 서울장여관 사고에 대해 우리는 뭐라 변명할 것인가.제천 참사를 소방관들의 책임으로만 규정할 수 있을까.부족한 진화인력과 어설픈 지휘력,미흡한 소방법규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우리사회에 내재된 무질서와 탈불법,금전만능주의가 더 큰 원인은 아닌지…

많은 소방관들이 화재진압에 나설 때마다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소방관의 기도’를 되뇌인다.‘신이시여,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신이시여 내 형제가 추락하거든 내가 곁에 있게 하소서’.기도의 간절함에도 미국에서는 매년 100여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국내에선 연평균 7명이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다.이들은 모두가 뛰쳐나오는 그 곳,비상구도 없는 화염 속에 스스로를 던진다.이런 희생,누가 강요하는가.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비상구’를 없앤 우리사회가 죄인이다.

강병로 논설위원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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