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금메달 1개가 은메달 2개보다 값질까?

▲ 일러스트/한규빛
▲ 일러스트/한규빛

국가 상호 간 친목 도모
인류애 증진 목적 올림픽
자존심 대결·상업화 과열

우리나라 금메달 우선주의
미·중·일 주요 언론 매체와
종합 순위 집계법부터 달라

정현 준결승전 진출처럼
4등 혹은 그 이하에게도
박수 보내는 사회됐으면


“세상은 1등만 기억합니다.”

1990년대 초에 제작된 삼성의 기업 광고는 전화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그레이엄 벨이 인류사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긴 반면,두 번째로 특허를 신청한 에릴샤 그레이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히 잊혀졌다며 삼성의 1등주의 철학을 웅변한 바 있다.하지만 스포츠 보도를 둘러싼 국내 미디어의 행태를 보면 비단 삼성만 1등주의를 신봉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2주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이다.전 세계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국가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인류애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탄생했다.더불어 동계 올림픽은 그로부터 28년 뒤인 1924년,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이후 2년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한 세기 가까이 개최된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은 월드컵과 함께 단일 스포츠 행사로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 됐다.안타까운 사실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의 바람과 달리,횟수를 거듭할수록 국가 간의 자존심 경쟁과 올림픽의 상업화 속에 최초의 올림픽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정점에 위치해 있는 것이 한국의 경우,금메달 우선주의라는 생각이다.

시계 바늘을 8년 전인 2010년 2월의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당시로 되돌려 보자.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는 매일 국가 간 메달 순위를 발표했는데 대회 종료와 함께 1위로 올림픽을 마친 국가는 금메달 8개,은메달 11개,동메달 7개 등 총 26개의 메달을 획득한 독일이었다.다음으로는 금메달 7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얻는 미국이,3위는 금메달 7개 등 모두 19개의 메달을 가져간 노르웨이가 차지했다.재미있는 것은 메달 집계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보도 순위가 ‘네이버’와 조금 달랐다는 사실이었다.‘뉴욕 타임스’에서는 1위가 미국이었으며 독일이 2위,노르웨이가 3위였다.그렇다고 ‘뉴욕 타임스’만 미국을 1위로 올려 놓은 것이 아니었다.중국과 일본의 언론 매체들 역시 미국을 1위로 올려 놓았다.이유는 간단했다.‘뉴욕 타임스’와 ‘신화 통신’을 비롯해 ‘요미우리’ ‘아사히’ 등 미국과 중국,일본의 언론 매체들이 총 메달 획득 수를 통해 국가 순위를 나열했기 때문이었다.금,은,동의 종류와 상관없이 메달 수만으로 순서를 정한 것이다.그리하여 ‘네이버’의 메달 집계에서는 금메달 6개를 포함해 총 메달 수 8개의 스위스가 5위에 오른 반면,금메달 3개를 포함해 총 메달 수 13개의 러시아는 10위에 머무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달 집계 방식이 비단 ‘네이버’만의 것이었을까? 2010년의 동계 올림픽 메달 집계 순위를 보도함에 있어 유력 일간지들은 색깔별 메달을 그려 넣은 그래픽까지 동원하며 금메달 순위를 알리는데 주력했다.참,‘신화 통신’에서는 1위부터 순서대로 각 국가의 메달 집계 상황을 보도했지만‘뉴욕 타임스’는 순위를 알리지 않은 채 총 메달 획득 순서대로 국가들을 나열해 놓기만 했다.때문에 독자들이 순위에 관심을 갖고 일일이 순서를 세지 않는 한,어느 국가가 몇 위를 하고 있으며 또 최종적으로 몇 위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참고로 국제 올림픽 위원회인 IOC는 나라별 순위를 매기지 않고 있다.이른바,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행태는 2012년의 런던 올림픽을 포함해 2014년의 소치 동계 올림픽,그리고 2016년의 리우 올림픽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국내 언론들은 총 메달 수 17개의 미국을 종합 순위 1위로 보도했다.영국이 총 메달 수 38개였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7개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2014년의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는 1위 국가인 러시아의 총 메달 수가 33개로 대회 참가국들 가운데 가장 많았기에 1위 선정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다음으로는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미국이 총 메달 수 26개의 노르웨이보다 메달 획득에서 2개가 더 앞섰지만 노르웨이의 금메달 11개보다 2개가 적은 9개를 얻은 까닭에 4위에 배치되었다.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총 메달 수 70개의 중국은 금메달에서 1개가 뒤지는 바람에 총 메달 수 67개의 영국에 밀려 3위로 기록됐다.한국은 메달 수가 21개에 불과해 선진국들의 집계 방식에 따르면 11위에 해당했지만 금메달 9개로 8위에 등극했고.

정말 금메달 1개가 은메달 2개,동메달 3개보다 값져야만 할까? 만일 그렇다면 한국은 금메달과 1등만 기억해야 하는 불행한 나라다.테니스에서는 정현 선수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준결승 전에 진출했다고 미디어가 연일 플래시를 터뜨리는데,올림픽에서도 각 종목 별로 그러한 의의를 찾는 시도가 이번부터라도 시작되었으면 한다.그런 면에서 한국은 올림픽 4등,아니 그 이하의 성적도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의 “세상은 4등도 기억합니다”라는 새로운 TV 광고를 보고 싶다.


심훈 교수는 196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를 역임했다.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02년부터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