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7일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서울대 부속병원에 난입 민간인 학살(서울대병원 학살사건),1950년 6월28일 한강 인도교 폭파 과정에서 민간인 800여 명 사망(한강 인도교 폭파사건),1950년 10월 인민군 함흥시에서 퇴각하면서 약 1만2000여 명 학살 추정(함흥 학살사건),한국전쟁 중 국군이나 반공단체 등에 의해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20만명 추정(보도연맹 사건)” 이 사례는 6·25 당시 남북을 막론하고 무고한 민간인이 죽임을 당한 사건 중 일부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6·25로 인해 600여 만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그 중 민간인은 남북을 합쳐 77만 여명이 사망했고,국군 13만 여명과 북한군 52만 여명이 전사했다.또 외국에서 참전했던 UN군 3만 여명과 중국군 11만 여명이 사망해 전체적으로 사망자만 156만 여명에 달했다.여기에 실종자 120여 만명과 부상자 등 3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내고 전쟁 이전상태로 되돌아갔다.

6·25는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남한 공업시설의 40%,주택의 16%를 파괴시켰고,북한도 전력의 74%,화학공업의 70%가 피해를 입었다.하지만 더 큰 피해는 양측에게 반공,반미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 분단체제가 더욱 공고화되었고,이로 인해 동족간의 증오심은 하늘을 찔렀다.전쟁이 끝난 지 6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지금 이 순간에도 남북은 대립과 갈등이 상존하는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고 있다.모두가 6·25라는 전쟁이 젊은세대에게 남긴 폐해이자 숙명이다.

전쟁은 이처럼 엄혹한 것이다.손자병법에도 “전쟁은 백성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문제로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치명적인 살상무기가 없던 옛날에도 그러했거니와 순식간에 수 십 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첨단무기가 즐비한 오늘날의 전쟁이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더구나 전쟁의 참상은 결국 힘없는 민간인이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앞서 열거했던 6·25의 참상이 이를 증명한다.

‘정당한 전쟁보다 부당한 평화가 낫다’는 말이 있다.전쟁과 평화가 정쟁의 수단이 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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