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묵호 바다는 사납다.백두대간에서 내리꽂히는 칼바람과 바닷바람이 뒤엉켜 시퍼렇게 멍들기 일쑤다.그 바다에서 사람들은 억척스럽게 삶을 건져 올린다.채낚기 어선의 집어등에 희망을 걸고 오징어를 쫓아 동해에서 남해,서해로 몇 달씩 유랑하는 사람들.그러다 지치면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담화마을에 몸을 누인다.언제나 가난했던 마을.오징어가 풍어를 이루기라도 하면 골목길은 하루 종일 질퍽거렸다.오징어를 나르던 함지박에서 흘러내린 짠물의 흔적이다.묵호항 ‘논골담길’은 그렇게 탄생했다.

논골담길엔 바닷가 사람들의 거칠고 투박한 삶이 알알이 박혀 있다.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바다 유목민들의 고단함과 잠깐의 휴식이 공존하는 곳.그곳에서 차린 밥상은 ‘짠물 반 눈물 반’.뱃사람의 근육질 노동이 밥이 되고,아낙네들의 머릿짐이 국이 되어 밥상에 차려지는 것이다.그 논골담길이 거친 세월을 이겨내고 관광명소가 됐다.등대가 불을 밝히고 논골담길마다 가로등이 켜지면 밤의 신세계가 펼쳐진다.이 산동네 마을이 낯선 손님을 맞았다.묵호항에 닻을 내린 만경봉-92호!

선체 길이 162.1 m,폭 20.5 m,9672 t,최대속력 23 노트.350명이 정원인 만경봉-92호의 제원이다.2002년 아시안게임 당시 북한응원단을 태우고 부산 다대포항에 입항했던 그 배다.이번엔 평창동계올림픽 축하 공연을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 80명과 춤·노래 단원 등 140여 명으로 이루어진 삼지연관현악단과 함께 남한을 찾았다.강릉(8일)과 서울(11일)에서 두 차례 공연이 예정돼 1주일 넘게 남한에 머물게 된다.이 기간에 묵호항과 논골담길 담화마을은 어떤 역사를 써내려갈지….

만경봉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두 갈래다.남북교류의 상징이거나 남남갈등의 진원지이거나.만경봉호가 묵호항에 입항했을 때 두 시선은 격하게 충돌했다.선명하게 박힌 인공기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16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1585번지 일대엔 ‘통일아시아드공원’이 조성됐다.적대적 과거가 아닌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묵호항과 논골담길 마을에도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통일과 남북교류를 염원하는 평화의 공간은 어떨까.남북 뱃길의 정례화는 더욱 좋고.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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