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한 시골 유학생에게 서울의 만원 버스는 두 개의 안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하나는 싸구려 숄더백이 예리한 칼날에 찢기고 지갑이 털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내 엉덩이가 불쾌하게 ‘뜨뜻했던’사건이었다.누군가 뒤에서 자신의 주요부위를 밀착한 모양이었다.이때 고개를 휙 돌려 째려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그랬다면 나는 내 자존심도 되찾고 놈의 유사 범죄의 재발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성폭력은 아닐지라도 집에서,거리에서,직장에서 이런 추행 한 두 가지 안 겪어본 여성은 없을 것이다.얼마나 흔히 겪기에 보통의 경험이라고 칭할까(원래 ‘보통의 경험’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펴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가이드북의 제목이다).우아해 보이는 기네스 펠트로,강해 보이는 안젤리나 졸리도 겪었으니 힘없는 우리나라의 무명 여배우야 말해 무엇 하랴.사실 우리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기자,검사 같은 엘리트 집단에 들어가려는 마음도 있다.그런데 같은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성추행,성폭행을 당할 뿐 아니라 정당한 이의제기를 하면 일 잘하는 동료의 앞길을 막는 꽃뱀 취급을 받는다.우리는 그런 취급을 당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하지 않았다.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지금 우리나라에도 다시 #미투 열풍이 시작되었다.재작년에 문화계,영화계에서 작년에 한샘,현대카드에서 성폭력 의혹 고발이 잇따랐지만 그것이 물살을 이루지는 못했다.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종류의 폭로는 지난한 과정을 예고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는 양상이 바뀌었다.이효경 경기도의원,이재정 국회의원 등이 #미투 고발에 동참하고 나선 데 이어 금호아시아나 여성 승무원들에 대한 박삼구 회장의 만행도 언론에 보도되었다.매달 정기적으로 본사를 방문해 빙 둘러서서 손뼉을 치는 여성 승무원들을 껴안거나 손을 주무르고 설날에는 줄을 세워 한 명씩 세배를 받았다니 줄을 서서 기다릴 때의 기분이 얼마나 굴욕적이었을까.그건 얼마 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성심병원 일송재단의 만행과 비슷하다.재단의 나이든 임직원들 앞에서 탱크톱과 핫팬츠를 입고 아이돌의 섹시 댄스를 추는 어린 간호사들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여성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한 사람의 삶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인 성폭력이 너무나 흔한 보통의 경험이 되고 있다.흔히들 네가 술을 마셔서 그랬다,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랬다,늦게 귀가해서 그랬다고 피해자 탓을 한다.그러나 우리가 매일 긴 바지만 입고 술은 입에도 안 대고 6시에 제깍제깍 귀가한다고 성폭력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의 가해자는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이고 우리의 옷차림,음주여부에는 크게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그러니 우리는 자책을 멈추고 간을 키워야 한다.놈의 얼굴을,행동을,주요부위를 똑바로 보고 바로 코멘트를 달아야 한다.“지금 뭐 하는 거죠?”또는 “애걔…”라고.그게 동일 범죄의 재발을 막는 처사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강하다.민우회의 슬로건이다.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여기저기서 많은 여성들이 #미투를 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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