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1년여 전 일이다.강원출신 출향 공직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해 인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세종시에서 있었다.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유산으로 남을 ‘평화의 벽과 통합의 문’에 평화 메시지를 적는 시간이 주어졌다.참석자들은 하나 둘 평창 평화올림픽을 기원하며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하지만 한 분만은 정중하게 사양했다.“죄송합니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평화’라는 단어에 강한 거부감을 내보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두번씩이나.행사를 마친후 KTX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며 그 분의 선택을 곰곰이 되짚어 봤다.1970년대 육사를 졸업하고 남북대치가 삼엄했던 시기에 군생활을 하며 대북정보를 다뤘던 그에게 평화는 위장전술이었다.

지난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문재인 대통령은 하늘색,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자주색 넥타이를 맸다.양 정상은 위안부와 북한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하지만 상황 인식은 넥타이 색상만큼 확연히 달랐다.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공조를 흩뜨린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하지만 아베 총리는 “북한은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북한의 미소 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이웃국가 정상에 대한 무례였다.문 대통령은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을 위한 환영 리셉션을 주관했다.당초 오후 5시28분30초 도착 예정이던 펜스 미국 부통령은 오후 6시38분 나타났다.그는 헤드테이블은 물론 옆 테이블의 정상들과도 악수를 나눴다.하지만 우리가 초대한 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채 6분만에 퇴장했다.동맹국 국민에 대한 결례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0일 오전 특사 자격으로 문 대통령을 예방했다.그는 청와대 방명록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 지고 통일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적었다.김여정 특사는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구두 메시지도 전했다.그녀는 이날 오찬중 문 대통령에게 “빠른 시일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문 대통령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서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도 했다.한반도 전쟁설이 파다했던 일촉즉발의 엄중한 상황을 생각하면 대반전이다.

일본과 미국이 9일 보여준 무례와 결례의 밑바닥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라 다니고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 방공호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있을 수 있는 반응이다.우방과 동맹은 물론 우리 내부도 ‘평창올림픽’과 ‘평양올림픽’ 공방이 여전하다.평화를 위장전술로 바라보는 인식처럼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한 우려가 엄존하는 것도 현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은 평화다.북한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극복하고 평창은 올림픽을 넘어 평화를 향해 가야 한다.그리고 멀고 먼 그 여정의 길목에서 북한은 이제 답을 내놓아야 한다.우리와 국제사회는 김여정 특사가 청와대 방명록에 남긴 글의 진정성을 묻고 있다.문 대통령도 방북 요청에 ‘여건 성사’로 답을 대신했다.11일 밤 평양으로 돌아간 김여정 특사와 김정은 위원장은 과연 서울과 평양이 더 가까워 지고 통일번영의 미래를 위해 북한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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