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만든 명암
■잠들지 않는 올림픽촌
올림픽관문역인 KTX강릉역은 요즘 거의 24시간 체제다.서울에서 오는 마지막 열차는 새벽 1시25분에 강릉역 플랫폼에 들어서 승객들을 쏟아낸다.강릉역을 출발해 서울로 가는 열차도 매일 새벽 1시까지 승객들을 태운다.아침에 서울로 가는 첫 열차는 오전 5시 40분부터 기적을 울린다.이 때문에 매일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강릉역 대합실은 올림픽 손님들로 북적인다.평창에서 설상 경기를 관람한 뒤 심야 열차를 타고 강릉의 숙소로 돌아오는 외국인 관람객들도 적지않다.
김수기 강릉역 안내센터장은 “평창에서 스키 경기를 구경하고 자정이 넘어 강릉역에 도착한 외국인 관람객 200명이 택시를 타기 위해 장사진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빙상 경기장이 밀집해 있는 올림픽파크도 매일 밤 ‘만원’이다.쇼트트랙과 피겨,아이스하키,컬링,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짜릿한 명승부가 연일 빙판을 달구고,공연,전시,체험,기업 홍보관 등의 볼거리 마당이 줄지어 펼쳐지면서 올림픽파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극장을 방불케한다.
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아이스하키 경기가 하루 일정을 마감하는 자정 즈음에는 외국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치 해외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선수촌에서 가장 가까운 유천택지 지구는 13일 밤 서울 이태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외국인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저녁과 밤을 즐겼다.유천택지의 돼지고기집에서 삼겹살을 즐기던 트로이 윌리엄(49·미국) 씨는 “생고기를 내가 직접 조리해 먹는다는 점에서 삼겹살은 매우 흥미로운 음식이고,강릉의 밤도 최고”라고 말했다.
치킨집 주인 권기득(35) 씨는 “외국인이 크게 늘어 매출이 2배로 뛰었다.치킨을 하루 100마리씩 파는 것 같다.전체 손님의 3분의 2가 외국인”이라고 전했고,호프집 관계자 유준혁(25) 씨는 “손님의 70∼80%가 외국인인데,치킨을 좋아하고 부대찌개 등 매운 음식도 잘 먹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한산한 횟집거리
“영어 메뉴판까지 만들었는데,사용할 일이 없네요.”
13일 밤 경포에서 만난 Y횟집 주인은 올림픽 분위기를 묻자 실내를 손으로 가리켰다.70∼80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횟집 테이블 탁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내국인 부부로 보이는 두사람 뿐 이었다.저녁 7시 30분,주인은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 이렇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외국인들을 위해 불고기 메뉴까지 준비한 횟집도 있지만,경포횟집 거리의 사정은 대부분 마찬가지다.S횟집 관계자는 “올림픽 개막 직전에 불고기 정식 메뉴를 만들고,생선구이와 조개구이 정식 등을 준비했는데,재미를 못본다”며 “10일과 11일,주말에 하루 30팀 정도를 받았는데,평소 겨울의 주말 수준도 안되는 매출”이라고 말했다.
횟집 관계자들은 차량 2부제 시행 등으로 인해 차량 운행이 제한되면서 시민과 내국인 손님들까지 줄었다고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J횟집 관계자는 “올림픽에 대비해 외국어 메뉴판까지 만들었는데,외국인 구경이 어려우니 보여줄 일이 없다”고 한숨지었다.
이 같은 사정은 정동진과 사천항 등 유명 횟집거리들이 다르지 않다,정동진 H회센터 대표 이모(56) 씨는 “회는 외국인들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림픽 기간 중에 그냥 현상유지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우리나라 손님들까지 발길이 끊기니 이걸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올림픽 중요 경기가 소비시간인 야간·심야 시간대에 집중되고,차량 2부제 등으로 강릉 방문을 꺼리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올림픽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평창올림픽 이동편집국/구정민·이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