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명절 보내세요”
과거 여자도 함께 제사 주관 현재보다 성차별 없어…조선 전기 남자가 제사음식 준비

▲ 이선민 작 ‘여자의 집 Ⅱ,이순자의 집 #1 제사풍경’
▲ 이선민 작 ‘여자의 집 Ⅱ,이순자의 집 #1 제사풍경’
“성평등한 설 명절 보내세요.” 지난해 여성가족부를 필두로 각 부처 남성 장관들이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여성을 도와 명절음식 만들기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일부 여성들은 명절마다 고된 음식준비에 동원,가짜 깁스가 등장할 정도로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다.공포의 명절이 지나고 나면 명절증후군,이혼률 급증 등이 각종 이슈로 떠오른다.성평등한 명절문화에 대해 되짚어본다.

성차별 제사 문화

오늘날 명절날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다.바로 이선민 작가가 지난 2004년 발표한 사진작품 ‘여자의 집 Ⅱ,이순자의 집 #1 제사풍경’이다.한 프레임 속에서 남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사진 속 남자들은 잘 차려진 제사상을 향해 절을 하고 여자들은 그들을 구경한다.방 안에는 제사가 뭔지도 모를 남자아이조차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막상 제사 음식을 도맡았던 여자들은 금녀의 구역인듯 범접할 수 없다.이것이 여자들이 겪는 명절의 현실,개인의 의식과 사회 분위기는 변했는데 명절·제사 문화 만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제사를 지냈다.성리학 기본 예법서인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따르면 제례로 삼헌(三獻)을 할 때 첫 잔은 초헌관(初獻官)인 장자가 가장 먼저 신위(神位)에 술잔을 올리고 두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으로 주부(主婦)가 기록됐다.주부는 제사를 맡는 주인의 아내로 장남의 경우 맏며느리가 주부가 되며 주인에 버금가는 역할로 술과 절을 올리며 제사에 참여했다.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관(終獻官)은 장자를 제외한 집안 어르신 중 한 명이 맡았다.차례 역시 남녀가 함께 예를 올렸다.차례는 마찬가지로 초헌관인 장자가 먼저 두 번의 절을 올리고 잔을 채우면,남녀 구별하지 않고 온가족이 참신례(參神禮)를 드린다.다만 이때 남자는 2번,여자는 4번 절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김광수 성균관 전례위원회 부위원장은 “과거 차별이 있었다는 것은 와전된 것으로 여자도 함께 제사를 주관하는 등 현재보다 성차별이 없었다”며 “현재로 전해오면서 여자들이 집안 어르신에게 양보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남자들만 하는 것으로 인식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차례상의 오해

몇해 전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과거 제사 음식 준비는 남자가 했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황 씨는 “조선 전기만 해도 양반가에서 제사음식을 하는 사람은 남자였다”며 “전통대로라면 남자가 모두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전통 제사상은 현재보다 종류와 가짓수가 적어 준비가 비교적 간단했다.조선 유교 예법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도 밤,배,조기,시금치 등으로 차례상 음식을 규정하지 않고 포,채,과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다.유교는 자연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계절에 가장 많이 나오는 과일,형편에 맞는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이 유교예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규격화된 차례상은 어떻게 나왔을까.조선에서 유교 의례를 행하는 계급은 양반으로 제사 역시 기본적으로 지배 권력층의 행사였다.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편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대부 이상은 4대 봉사,칠품 이하 관리는 조부까지 2대 봉사,일반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기록됐다.당시 국민의 80%가 칠품 이상의 관리에 들지 못했으므로 대다수는 부모제사만 지낸 것이다.조선 말기 족보 거래가 생기고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계급사회가 무너지는 등 양반이 평민보다 많은 사회가 되자 너도나도 사대부의 예절을 따라 4대 봉사를 시작,제사에 대한 지식이 없던 사람들이 주위 여러 집의 제사상을 보고 따라해 갖가지 음식을 올리는 풍습이 자리잡았다.이러한 허례허식을 간소화하기 위해 가정의례준칙이 공표됐지만 계속해서 비대해졌다.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족이 다같이 모여 조상을 기억하며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본래 차례상의 취지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진행할 것을 권유한다. 한승미 singm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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