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에서 환경단체가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산양.
▲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에서 환경단체가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산양.
저희는 설악산에 사는 산양 스물여덟 마리입니다.

저희는 21일 원고로서 서울행정법원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문화재 현상변경 취소 소송을 제기합니다.

문화재청은 저희가 사는 곳에 기업이 설악산 케이블카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도록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했다고 합니다.

독립심의기구인 문화재위원회가 현지조사를 해본 결과 설악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면서 반대했는데도요.

문화재보호법이 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Ⅰ급인 저희는 행동반경이 1㎢ 내외로 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좁습니다.

그런 저희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게 되면 그 소음과 진동 등 환경 변화로 생존이 어려울 거예요.

여러분 집 위로 송전선이 갑자기 생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민들이 다 같이 반대에 나서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곳에 지주를 여섯 개 박고 케이블카를 만들어서, 1년에 약 60만명이 드나든다고 합니다.

우리 동물은 여러분과 달리 법적으로 소송을 할 당사자 능력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야생생물 보호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공동대표가 저희의 법적 후견인으로 소송에 참여합니다.

미국에서는 저희와 같은 자연물을 원고로 해서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여럿 있고, 법원이 자연물의 원고 자격을 인정한 판례도 있다고 해요.

저희가 내는 이 소송처럼 자연물을 원고로 삼고 인간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소송이 결과적으로 잘 안 된다고 해서 저희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요.

그러나 저희는 법원이 기존의 판례로 결론을 예단하지 말고, 나날이 발전하는 인간의 인식과 법·제도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동물의 권익을 고민해주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그저 마음놓고 이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뿐입니다.

[※ 이 기사는 21일 오후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이번 소송을 주관하는 동물권연구단체 피앤알(PNR)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박그림 대표가 자신을 산양에 빗대 발언한 내용을 토대로 산양을 의인화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박 대표와 피앤알, 생태학자 김산하 박사는 산양을 함께 원고로 올려서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문화재 현상변경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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