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규 변호사
▲ 김창규 변호사
최근 검찰 내 모 여검사의 성추행 폭로와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문단의 성폭력 관행 논란이 뜨겁다.하나는 관료 집단,하나는 문단이라는 사회분야에서,다수의 폭력이 어떻게 소수를 짓밟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수 중심 사고의 폐해,나아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속살들을 보여주고 있다.검찰 조직은 검사 동일체 원칙이 지배하며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여,피라미드와 같은 권력구조,상명하복의 조직 문화가 강조되고 있다.근래 문제가 된,검찰내 성추행 문제 역시 위와 같은 근본적인 조직적 특성에서 기인하고 있는 면이 크다고 할 것이다.

검찰 성추행 사건을 살펴보면,이는 성적인 문제를 넘어서서,본질적으로는 권력의 집중,특히 권력을 쥔 다수의 횡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권력을 가진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지 않고 소수의 무조건적 복종이라는 도그마만을 강요하고 스스로 권력의 마약에 취하여,권력의 칼을 부적절하게 휘두르다 보니,발생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권력이라는 것은 집중이 필요할 때도 있고 분산이 필요할 때도 있고,수사기관은 수사의 능률성·효율성을 위하여 수사권력의 집중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그 권력을 남용한다면,다시 1987년과 같은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검찰의 권력 남용 논란이 현재 수사권 독립 등의 검찰 권력 분산의 단초를 제공한 것처럼,이번 검찰 내 성추문 사건은 검찰 조직 내의 권력의 독점·전횡이 아니라 권력의 합리적인 행사,그리고 권력을 갖지 않은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최영미 시인 폭로 사건에서도 마초 남성 기성작가들의 왜곡된 권력 행사,그리고 이에 대해 쉽게 저항하지 못 하는 여성 작가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아마도 우리 사회는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남을 짓밟으려 하는,왜곡된 갈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존중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속칭 팔자대로 살게 된다.우리가 다수라면,우리는 운수 좋은 다수라는 것을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소수자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다수자라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다른 소수자들을 무시하는 것을 많이 본다.근래 우리나라도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무시나 차별을 통해서 이런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된다.나찌 독일 시대에 카톨릭 신자가 처음에는 유대인 학살,다음에는 개신교 억압을 외면하였더니,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순서가 되어 카톨릭 신자도 억압받고 탄압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지금 우리가 권력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려 하지 않고 전횡하려 하고,자신이 권력자·다수자라는 생각에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억압한다면,혹은 외면한다면,그 결과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화살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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